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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동차 사고를 냈습니다.

호린(JORRIN) 2011. 5. 23. 18:29

<!-BY_DAUM->

4월 9일 저녁... 그러니까, 삼보앙가에서 돌아온 날 저녁에 모처럼 쐬주 각 일 병씩 빨고는 이곳 저곳을 헤메다가 '어, 저기 왼쪽에 마사지샾이 있네'라는 여친의 말에 그냥 유턴을 시도하다가, 유턴하려고 잠시 머뭇거리는 저를 참지 못하고 그냥 노랑선을 넘어서 추월하려던, 전조등이고 실내등이고 아무 것도 켜지 않고 땡크처럼 돌진하던 지프니에게 그냥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대략 토요일 밤 9시 반 경...

 

운전석 문이 찌그러 들어 유리창도 내려오지 않고 문이 열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차를 조금 움직였는데, 이 아그들이 제가 도망가는 줄 알고 난리를 치네요. 내려서 보니까, 지프니 범퍼에 부딪쳐서 제 차는 찌그러들고 찢어졌는데, 그놈은 생생하네요.

 

쐬주를 한 병씩이니 마셨기에 음주 운전을 숨기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경찰 나으리들께서 30분 이상 늦게 나오시는 바람에 그 건은 그냥 무사히 통과됐고, 누가 잘잘못을 했는지를 가릴 시간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멀쩡한 지프니 승객 중 3 여자가 환자라면서 집에도 안가고 LTO까지 쫒아 오네요. 나 원 참...

 

지프니 기사가 저더러 5,000페소를 줘서 저 여자들을 돌려보내자는데, 제가 미쳤습니까? 그냥 법대로 하자고 했죠.

 

지프니 기사가 그 여자들을 델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 왔는데, 그 내용은 별 게 없고 그냥 처방전이더군요. 경찰이 그러더군요. 제가 가입한 보험이 워낙 좋은 보험이어서 일단 먼저 약값을 지불하고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제 돈으로 그 여자들에게 약값을 먼저 주라고 권하데요.

 

그래서, 직접 돈으로 지급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약국을 3군데 돌아다니며 처방전의 약을 다 샀습니다. 대략 500페소가 채 안나오더군요.

 

젊은 두 아그들(18세, 19세)은 바르는 약이라 조금 비싸고, 30세 정도의 나이든 아줌마(옆구리에 퍼렇게 멍든 것을 보여주더구요. 사고 직후에 그렇게 멍이 드나요? 며칠 전에 부부싸움 한 흔적이죠)는 2주 동안 먹는 약인데 의외로 싸더군요.

 

그것을 들고 LTO로 돌아왔더니 새벽 2시가 넘었네요. 이번에는 3 여자가 내일 일을 못나가니 일당을 달랍니다. 경찰관 아저씨가 얼마나 요구하냐고 물어보니까 일인당 하루에 300페소씩...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2일치를 달라고 그러네요. 너무 늦었다고... 도합 1,800페소.

 

경찰관 아저씨, 고민하더니 딱 잘라서 말합니다. 저와 지프니 기사가 반반씩 나눠서 지급하라고...  저야 좋다고 그랬죠. 처음 당하는 것이어서 즐기며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저보고 다 지급하라고 해도 줘야 할 상황이었는데, 반반씩이라니...

 

900페소, 얼른 지급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들이 지프니기사에게 하는 말 "꾸야(형, 오빠의 뜻으로 흔히 부르는 말), 너한테는 안받을께"

 

즉, 기사한테는 안받겠다는 겁니다. 외국인에게서 몇 푼 뜯어 내려고 아프지도 않은 몸으로 한밤중에 5시간 이상을 버틴거죠 ㅎㅎㅎ

 

경찰관 아저씨가 얼른 노트에 3 여자의 싸인을 받고는 서둘러 조서를 마칩니다. 대략 오전 3시쯤 끝났네요.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나서 일단 느낀 점은, 첫째로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이 굉장히 유리합니다. 다쳤다고 주장하는 3 여자가 뭐라고 하든 법대로 하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 사람들이 보험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면 1년 정도 걸립니다. 그냥 포기해야죠. 몇 푼 되지도 않으니 그냥 줘버리고 말았는데, 만약에 지프니기사에게서는 안 받을 것 같았으면 아예 지급할 생각을 안했을 겁니다. 보험회사에 청구하라고 배째라 정신으로 나갔겠죠.

 

둘째로, 이곳에서는 애매하면 그냥 끝납니다. 즉, 가해자고 피해자고 없습니다. 저는 제가 불법 U턴하려는 찰라에 지프니가 전조등을 안켜고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하려고 하다가 지프니가 저를 받아서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지프니 운전사는 제가 2차로에서 그냥 유턴하려고해서 일어난 사고였다고 주장하더군요. 실제로는 제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제가 내민 보험가입증서와 제 변호사의 명합을 보고서는 '당신은 좋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밤 늦게 변호사를 부를 필요가 없다'면서 양쪽의 주장만 그대로 적어주더군요. 그게 경찰 Clearance 내용 전부입니다.

 

보험사에서는 이런 경우에는 그냥 넘어가야 한다는군요. 즉, 제 쪽의 피해 48,000 여 페소는 그냥 우리 쪽에서 처리하고 지프니 쪽에게는 일체의 손해청구가 불가능하다는군요. 우리나라의 법체계를 가정하고 대응했었는데, 다음부터는 지프니가 오면 피해다녀야 할까봐요.

 

셋째로, 필리핀에서는 시간이 똥입니다. 보험회사에서 지정하는 정비소 대신에 제가 원하는 곳(제 차가 닛산이라서 닛산센터)으로 가려면 총 비용 중에서 2,000페소를 우선적으로 제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케이 했는데도 마닐라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결국 2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방문한 닛산쎈터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문짝이나 뭐 어떤 부속이 없어서 대만이나 일본에서 부품이 와야 한다면서 빠르면 5월 29일 늦으면 6월 29일 그러면서 저혈압인 저를 치료해주려고 무던히나 노력하더군요.

 

엊그제 연락을 받고, 어제 닛산을 방문했습니다. 6월 둘째주나 셋째주에 나머지 부품이 오는데, 다음 주에 일단 한번 더 센터로 나와달라고 하더군요.

 

찌그러진 문짝이 쪽팔려서 한참동안 차를 몰지도 못하고 그냥 택시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닛산센터를 방문하고서는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아, 이게 필리핀이구나... 남들 볼 때 쪽 팔리지만 그냥 조수석으로 타고 내리고 그러면서 살자. 이만한 차(대략 50만 페소짜리)도 못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90%가 넘는다"

 

요즘 차를 몰고 나갈 때면, 가급적 1차로로 다닙니다. 그래야 스쳐지나가는 반대편 차로에서만 제 운전석 문짝을 보고 짧게나마 비웃을 수 있겠죠. 만약에 제가 2, 3차로로 가다가 신호에 걸려섰는데, 1, 2차로에 지프니가 섰다면... 승객이나 운전자나 행복해 죽으려들테니까요.

출처 : 가자 아름다운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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