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안오려는지 구름낀 하늘이지만 그래도 날이 많이 밝습니다.
아직 샤워를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어제까지는 찬물로 샤워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쌀쌀하더군요.
그래도 알몸으로 지낼 수 있을 정도니까 한국하고는 상당히 차이가 나죠.
지난달에 편도선수술을 받으려고 한국에 갔다가 겁도 나고 또 후속조치도 힘들 것 같아서 수술은 포기하고 치료약만 사왔습니다. 모 한의원 원장이 중학교 다닐 때부터 편도선염이 심했다는데, 의사가 되고난 다음에 '자신의 병도 못고치면서 어찌 타인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실험도구로 삼아 개발했다고 하는 한약이 있습니다. 개발 후에 관찰한 결과, 편도선염뿐만 아니라 아토피성피부염, 비염 등 호흡기와 연계된 제반 질병에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 병원에 찾아가 처방을 받았습니다.
뭐, 처방이라고 해봤자 문진만 하고 '탕'과 '환' 둘 중에 하나를 처방받는 것이 전부니까 개인별, 체질별로 다른 약재는 없는 모양입니다. 한의원에서 처방하여 조제해주는 약이지만 건강보조식품으로 등록하였기에 의료보험이 안되어 한달에 50만원씩 4달을 복용하라고 하더군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것은 2개월인데, 아토피성피부염과 비염까지 뿌리채 완전히 잡으려면 두달 더 복용해야 한다네요. 일단 2개월치만 '환'으로 구입했습니다. 효과가 있으면 두달 더 복용하고, 없으면 수술해야겠죠.
술, 담배, 인스탄트식품(프라이드 치킨, 과자, 탄산음료 포함)을 금지하라지만, 저는 담배와 설탕음식을 안하니까 라면과 프라이드 치킨만 조심하면 되겠더군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인스탄트식품을 멀리하라는 주된 이유가 MSG로 통칭되는 인공합성조미료 때문인데, 이곳 필리핀에서는 그것 안넣는 식당이 없으니까 처방을 따르자면 외식을 아예 못하게 되기 때문이죠.
두달간, 잘하면 넉달간 집에서 채식만 해야할 팔자에 놓이게 된거죠.
술은 과음만 하지말고 한잔씩 해도 되고 육류와 어류 채소를 골고루 섭취하라지만, 원래 집에서는 고기를 안먹기때문에, 또 기왕 치료를 시작한다면 확실히 체험해보고 싶어서 어지간하면 금주와 채식을 고집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즐기자고요...
12월 4일까지 별 부담없이 신나게 마셨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생활하며 고객이나 동료들과 마실 때처럼처럼 폭주까지는 아니고 즐길만큼, 하루에 보통 소주 한병이고 최고 한병 반 정도...
게다가 Bohol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올들어 세번째였지만, 드라이브 삼아서 약복용 기념으로 다녀왔죠. 저녁부터는 관광객과 주변불빛이 거의 없이 한적한 쵸콜렛힐스 호텔과 언덕위의 성채를 닮았다는 보홀 플라자 리조트에서 볼 것도 없는 아랫것들을 내려다보며 놀다가 왔습니다. 싼미겔필센을 하루에 대여섯병씩은 마신 것 같아요. 뭐 그래봤자 우리나라 맥주 두세병 용량이지만요.
음주 마지막날은 집주인(아떼)과 그 아들을 데리고 한국식당에 가서 돼지갈비에 쐬주에 비빔냉면까지 신나게 먹으며 자유를 만끽했죠.(집으로 오다가 빵가게에 들러 빵을 사는데, 경찰도 와서 빵을 사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즐겁게 대화하면서도 음주운전이 발각될까봐 걱정했는데, 이 나라에서는 음주운전단속을 안하다보니 그런 것은 별 관심이 없는지 재미있게 떠들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며 먼저 출발하더군요)
월요일부터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효과가 참 좋네요. 늘상 느끼는 일이지만 제 몸은 약에 대한 반응이 무척 빠릅니다. 물론 익숙해지면 무덤덤해지지만요. 최근에 편도선염이 심해지게 된데다가 술을 마시고 추위에 노출되거나 에어컨바람을 쐬다보니 포기하다시피 항생제를 복용하게 되었고, 아마도 그 양이 지난 20년간 복용한 양보다 더 많았으리라 생각되기에(250mg정제로 약 50 ~ 60알) 약발이 안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편도에 대한 자각증상이 전혀 없을 정도로 편안합니다.
이제부터는 채식으로만 살 계획인데, 걱정이 많네요.
작년에도 약 6개월간 채식으로 살아봤고, 재작년에는 2.5개월의 채식과 상당기간동안의 채식위주의 식사를 했기에 채식 자체는 어려움이 없는데, 문제는 필리핀에 밥과 함께 먹을 야채가 아주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꼭 필요하다면 30분 가까이 운전(거리가 멀어서 그런게 아니라 도로사정이 안좋아서...)하여 한국식품점에서 두세가지 구입할 수는 있지만 가격 때문에 찾는 이가 적다보니 신선도도 떨어지고 먹거리에 억메여 살기도 귀찮고...
어쨌거나 덕분에 당분간은 본의든 아니든 집에서 건전모드로 지내야할 판입니다. 편도선염의 근본부터 완치를 하든 싹을 잘라내든해야 북극의 오로라, 남미의 우유니소금사막, 히말라야 구경도 가능할테니 좋은 것만 생각하고 영어공부와 체력단련에 몰두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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