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킬링필드로 유명한 Cheoung Ek이란 곳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발견된 500여개의 킬링필드 중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죠. 프놈펜 시내 뚜억슬랭(옛 고등학교 자리)에서의 고문으로 파김치가 된 시민들을 데려와 학살한 곳이며, 위령탑이 세워져 있고, 교통편이나 언어적 안내가 충실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그 곳에는 인상적인 세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있죠.
첫 번째 나무는 사탕야자나무로, 그 단단한 나무잎 줄기의 톱니같은 돌기를 이용해서 사람의 목을 잘랐다는 나무죠.
나무의 생김새는 사진과 같고, 푸른 나뭇잎이 매달린 줄기에는 마치 톱과 같은 단단한 돌기가 잔뜩 달려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무슨 종류인지 몰라도 잎이 무성하고, 크고 단단한 나무입니다. 나무 줄기의 표면에서 사람의 혈흔,두피, 뇌수 등이 발견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린아이들의 발과 다리를 잡고 머리를 나무에 쳐서 죽일 때 사용했다는군요. 그것도 아이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너무나 끔찍해서 사진을 찍을 엄두를 못냈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보리수입니다. 인도의 석가는 보리수를 해탈의 장소로 사용하였지만, 크메르루즈군은 똑같은 보리수의 가지를 방송용 스피커 메다는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나무 부근에 가져다 둔 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해서 혁명가 같은 것을 틀어놓아 주변의 주민들이나 구금되어 있는 시민들이 야간에도 주둔군이 훈련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였다는군요. 사진의 나무가 현장에 있는 나무입니다.
스피커에서 멀리멀리 펴져나가는 힘찬 혁명가는 살인자가 만들어 내는 소리와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을 위장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죠.
프랑스 유학 후에 선생질을 하던 폴포트는 이렇게 하여 700만 인구 중에서 300만명(혹은 600만 인구 중에서 200만명)을 학살했다고 하죠. 유식하든지, 부자였든지, 이전의 친미 정권에 협력하였든지, 학살 명령을 거부하기 위해 탈영을 시도했든, 정권에 반대를 했든, 아무런 이유가 없든... 하여튼 모두 죽였습니다. 농사에 문외한이던 도시의 주민들을 아무것도 없이 시골로 내려보내 굶주려 죽게 만든 인구만도 부지기수여서 모두 610만명이 희생되었다는 1985년도 보고서도 있습니다. 그 당시 생존자가 400만명이고 현재 인구가 2천만명에 육박하니까 가능성이 있는 숫자죠. (대부분의 후진국에서 그러하듯이, 인구 통계가 부정확해서 숫자가 오락가락합니다)
폴포트는 어린 소년들을 잡아다가 크메르루즈군이라 칭하며 그네들을 살인의 선봉에 세웠는데, 17세에 크메르루즈군에 끌려가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을 죽였노라고 진술하는 내용도 들었습니다.
폴포트가 남긴 유명한 어록 중에는 "실수로 선량한 사람을 죽이는 잘못보다, 실수로 나쁜 사람을 살려 두는 잘못이 더 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크메르루즈군은 시민들을 죽이고 또 죽이고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참혹한 실상을 안타깝게 여긴 공산 베트남군이 공산주의자 폴포트를 쫒아내어 민주 정부가 들어서게 도와주었고, 베트남에서의 패전으로 약이 오를대로 오른 미국은 베트남이 밉다며 베트남 덕분에 설립된 신정부를 지원하는 대신에 태국과의 국경 근처 밀림으로 쫒겨가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던 폴포트에게 수 년 간에 걸쳐서 지원금을 보내주게 됩니다. 여기에 유럽도 동참하였지만 1984년 미국에서 만든 "Killing Field"란 영화(감독 롤랑 조페)에서 그 실상이 알려질 무렵부터는 지원을 중단하기에 이르렀죠.
저는 킬링필드 위령탑 앞에서 인간성의 끔찍함에 치를 떨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현재의 우리 모습이라는 생각에 또 한번 절망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국가 안보보다는 개인 출세의 도구와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을 제거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라든지, 악법으로 인한 개인의 희생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게 되지 않았냐고 항변하는 보수 꼴통들의 모습에, 학살을 지휘하던 폴포트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남을 학살해야만 했다는 당시 17세 소년들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죠.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이 법의 취지일텐데, 무수한 희생자를 만들어 내는 법을 악착같이 수호하는 권력과 그 기생층들.
그 위정자와 권력 기관들이 희생자들에게 죄를 씌워 매도하는 것에 동조했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에서 지워버린 후에 누군가가 독재나 불의에 대하여 언급하면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게 되었잖냐"라며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시민들.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을 표현할 때 흔히 개나 돼지를 언급하죠. 그러나 개와 돼지는 아무리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도 꼬리를 내리는 도전자를 응징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서로 잡아먹으려 하지도 않고요.
개나 돼지도 행하지 않는 그런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의식있다는 혹은 국가 가치관을 지키겠다는 그런 사람들의 행위이고, "내 이웃에서 누군가가 억울하게 죽든 말든, 인생이 망가지든 말든, 나와 내 가족 입에 밥만 배불리 들어오면 된다"는 인생관으로 오늘도 열심히 "좌빨이 어쩌고 저쩌고"하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경제적인 이유로(총알을 아끼기 위해서) 나무줄기의 돌기로 시민의 목을 따라고, 비닐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 씌워 시민을 질식사하게 만들라고, 어린아이의 머리를 나무줄기에 쳐죽이라고 주문하는 독재자와, 자신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시키는 대로 남을 죽였다는 어린 병사의 모습이 겹쳐짐을 보면서 오늘의 암담한 국가 현실과 시민의식에 마음이 아픕니다.
사진의 위령탑 내부에는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 중 7천여 구의 두골 부분만 17층에 걸쳐서 쌓아두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아직도 비가 오면 뼈와 삮은 옷가지 등이 나오고 있지만 미처 다 발굴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전국 방방곳곳에 산재한 500여개의 킬링필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탑 내부에 들어가 여기저기가 깨지고 함몰된 해골들과 대면하고 나니 더이상 깊은 산중에 홀로 있어도 무서울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밀림 속 킹코브라나 말라리아모기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자신의 사고 방식만이 옳다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인생이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고 우리가 진정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모습인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런데 밥숟가락을 놓기가 힘들어서 그럴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검새, 떡검, 색검 너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