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간이 남아도네요. 밖에는 비도 오고... 술 마실 시간도 아니고... 이 글을 올리고 드라이브나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2005년 봄이었던 것 같네요. 처음으로 신나이 1권을 접한 것이.
강원도 형집에 있던 책을 빌려보고는 1 ~ 3편을 다 사서 몇번씩 읽어보고,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 때문에 고민하다가 마닐라에서 통권(1 ~ 3권을 한권으로 만든 책)으로 된 원서를 사다가 처음부터 읽을 능력은 안되기에 한글판의 오역이라 싶은 부분만 참고로 대조해가며 읽었었죠.
이후에 [우정]과 [교감]을 읽으며 [교감]도 원서를 샀고,
남자가 번역한 하드카피 책이 한권 있었는데(아마도 The New Revelations인 듯한데 검색을 해보니 안나오네요), 번역 진짜 졸리게 해놓은 것, 그것도 읽었죠.
졸리는 책만 제외하고 대부분 3 ~ 5회는 읽었습니다. 읽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감염됐다는 뜻이고, 수차례 읽었다는 것은 중증이란 뜻이죠. 그래서, 몇년간의 비참한 현실에서도 항상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그럴 듯한 양복을 입고 사업한다고 돌아다니고, 손님과 함께 먹고 마신 뒤에 계산대 앞에서는 항상 용감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실상은 항상 비어있는 지갑이었죠. 그러나, 그 쓰라림도 내가 만든 현실이고, 내가 원해서 체험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는 아예 사지도 않고 읽지도 않았죠. 원서로 읽고 싶은 욕망에서요.
2010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입니다. 마지막 남은 짐 한박스를 어머니집으로 보내고나니 속옷 몇벌과 갈아입을 평상복 한벌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손에 쥔 노숙자신세가 됐죠. 10년 정도 제가 어머니 휴대폰사용료를 내드렸는데, 그때 어머니가 제 조카말을 듣고 무슨 착오로 5만원을 제 통장으로 넣어놓았더군요. 정말 착오였는데, 그 돈이 저를 살렸죠. 종로쪽 제일 허름한 목욕탕(알고보니 호모들의 밀집장소)에서 얼어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게 그 돈 덕분이니까요.
밥값도 걱정해야하는 신세여서 할일 없는 낮에는 영풍문고에 갔습니다. 의자도 몇개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통로에 앉아서도 책을 읽고 있더군요. 거기서 저와 같은 과속종에 속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60리터는 됨직한 베낭을 메고 들어와 한쪽 방화벽에 기대놓고 등산화도 그 앞에 벗어놓고 앉아서 책읽는 시간보다는 잠자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달팽이, 저는 민달팽이였죠.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보다 들고 다닐 집도 없는 민달팽이가 더 처량했지만, 어쨌든 같은 달팽이과라는 것은 확실했던거죠. 돈만 있었어도 소주 한잔하는 건데...
바로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주위 눈치 봐가면서 읽은 것이 [집으로]입니다. 그 책을 살 것이 아니었기에 빈곤한 경제형편에 대한 고민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책에 대한 이해와 기억이 동시에 이뤄져야했죠.
개발사업을 2007년 가을이면 끝날 줄 알고 덤벼들었다가, 2008년이 되어 그 해에는 마무리하는 환상을 가져보다가, 2009년에는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기에 꼭 끝날 줄 알았는데 또 그냥 넘어가고, 2010년 말에는 더 이상 투입할 정력도 끌어들일 자금도 없는 부도 직전의 사태까지 내몰렸었는데, 그나마 연말에 자금이 들어오기로 했기에 한가닥 미련만 갖고 서울에서 버틴거죠. 최악의 경우에 어머니집으로 도피할 고속버스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고요.
2011년 1월 10일에 드디어 돈이 들어왔고, 그로부터 1시간 이내에 마닐라행 비행기티켓과 생필품 등을 인터넷을 통해 다 샀습니다. 기분좋게 어머니와 누나에게 천만원씩 용돈하라고 보내주기도 했고, 그날 밤엔 친구와 아가씨들을 데리고 술도 한잔 마셔봤죠. 버릇을 남 못준다고 아침에 깨보니 강남의 어느 싸우나더군요. ㅎㅎ
그리고는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에 [Home with God]을 직수입으로 주문해서 받았습니다.
세부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내가 해야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를 실천했죠. 놀러다닐 것 다 다니고, 자고 싶은 것 다 자고, 누가 언제 소를 키우는지 신경도 안쓰고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것이 너무 귀찮더군요. 1/5 정도를 읽는데 반년 이상 걸렸습니다. 제 영어실력도 한몫했지만요.
제가 영어라면 남부끄러운 기억이 두가지 있습니다.
우선, 중학교 1학년 첫 영어시험에서 알파벳을 쭉 열거하고 중간중간 괄호를 친 공백에 해당되는 답을 적어넣는 것이 1번 문제였는데, 그것부터 다 틀렸습니다.
둘째는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 12월 22일인지 23일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용돈으로 독서실을 끊어 공부를 시작하였을 때입니다. 제 태어나서 처음 벌어진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그로인해 인생의 방향이 확 틀어졌죠.
[안현필]저 [기초실력 오력일체]라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책부터 공부해야만 하였는데,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 것이 "is", "are", "were", "been" 등이 다 같은 "be동사"란 것을 그때 처음 알았죠. 수학은 그래도 조금 수준이 높았지만 거기서 거기였기에,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중 1년 ~ 고 3년 과정의 국영수를 겨울방학동안에 자습으로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공부가 이듬해 3월의 모의고사에서 70점은 나올 정도로 성장하였는데, 그게 최고이자 최종성적이었죠.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그런 형식의 영어시험을 치루면 공부를 하든 안하든 평균 70점이 나왔고, 영어를 사용할 일도 없는데 머리속에 복잡하고 쓸모없는 것을 넣어다니게 만들었다며 교육정책을 욕할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신나이를 영어원서로 보면서 "아, 내가 이 책을 보려고 영어를 배웠구나"라는 착각도 해보았었죠.
저는 영어나 언어에는 특히 재간이 없습니다.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정확한 뜻을 알아야겠기에, 대충 아는 단어가 나와도 반드시 사전을 뒤져봐야하는 스타일이어서 시간이 남들보다 몇배는 더 걸리죠. 게다가 책을 던져놓고 놀다가 다시 1 페이지부터 시작하는 버릇이 있어서, 책의 앞부분은 몇번씩 보게 됩니다.
하여튼, 어느날 그 잘난 1/5 정도 읽은 현실에 놀라워하며 그때부터는 아예 사전없이 읽어봤습니다 대략 1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린 것 같던데, 영풍문고에서 읽은 번역본이 큰 도움이 됐죠.
그 이후에 다시 단어를 찾고, 노트에 적는 과정과 정밀하게 의미를 판독하는 과정을 다시 시작했죠. 하다보니 잘하면 10월에는 끝낼 수 있겠더군요. 그러나, 일일 목표량을 정해놓고 10월말 한국방문 전까지 끝내기로 작심한 바로 그날부터 목표달성은 불가능했고, 역시나 내가 해야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즐겼죠.
12월 초부터 시작한 편도선염 치료약을 복용하면서 다시 한번 원서를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정말로 밍기적거리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신년을 맞이하여 오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원서를 읽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는데, 얼레? 이번에는 오후까지 읽어도 그렇게 피곤하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오늘 오전 10시경(한국시간 11시경)에 311페이지를 다 마쳤습니다.
312페이지부터 324페이지까지 닐이 횡설수설 후기 적은 것이 있는데, 저는 닐이 대화 중에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대며 대화주제를 끊거나 옮겨가는 바람에 닐에 대한 인상이 별로 안좋습니다. 게다가 꼭 이상한 인용문만 어디서 주워 들고와서 집어넣는 바람에 해석에 애를 먹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닐이 작성한 책의 도입부와 후기는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2012년 1월 9일 오전 10시부로 [Home with God] 원서를 1회 정독하였음을 공식 선언합니다!!!
ㅎㅎㅎㅎ
저녁에 어디가서 쐬주라도 한병 까야겠어요. 인생살이 뭐 있나요? 편도선염이야 지금 못고치면 5월에 "하하"님께서 고쳐주실거고, 내공이 만만찮은 "고요새"님도 옆에서 기를 불어넣어주실테니 맘놓고 한잔 빨아봐야겠네요.
내일부터는 또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죠. 인생이란 것이 결국 다람쥐 쳇바퀴도는 것처럼 했던 것 하고 또 하고, 또 반복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으니까요. 아차, [Communion with God]도 읽어야 하는데...
해피 뉴 이어, 해피 마이 라이프, 브라보 홈 위드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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