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관련

시간의 비밀

호린(JORRIN) 2012. 1. 23. 00:28

가끔 가다보면 시간이 너무 잘간다고 생각될 때가 있고, 너무 안 간다고 생각될 때가 있죠.

 

 

예전에 예비군훈련 받을 때는 시계 두 개를 붙여놓아 서로 경쟁을 시키면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갈까하는 생각도 했었죠.

 

 

아래 글에서,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고 누군가가 받쳐주는 느낌이 들었다"는 글을 읽었는데, 제 경험을 말씀드려 볼께요.

 

 

 

일반적으로 군용(집단 강하용) 낙하산은 4초 이내에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받을 때, "일만~, 이만~, 삼만~, 사만~"을 외치며 4초가 흘러가는 것을 체크합니다.

 

 

즉, 사만까지 천천히 외치면 적어도 4초는 지나간다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낙하산이 펴졌는지 확인하고, 안펴졌다면 예비 낙하산을 펼치게 됩니다.

 

 

저의 첫 강하는 지금의 미사리에서 이뤄졌죠. 지상에서 부지런히 훈련한 결과 비행기에서 뛰어 내릴 때 전혀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구부린 상태에서 예의 "일만, 이만, 삼만, 사만"과 "산개검사"를 외쳤죠.

 

 

"산개검사" 즉, 낙하산이 펴졌는지 검사를 한다고 고개를 활짝 제쳐 머리 위를 쳐다보니, 이런... 이제 겨우 낙하산과 비행기를 연결하고 있는 생명줄과 낙하산이 풀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초속 100m 정도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잘해야 5m 정도 되는 생명줄과 10m가 채 안되는 낙하산이 이제 겨우 풀리고 있는 시간동안 저는 4초를 다 헤아리고 머리까지 들었던 것입니다.

 

 

다시 머리를 숙여 4초를 헤아렸습니다. 이론대로라면 4초 이내에 5m 정도의 생명줄과 10m가 안되는 낙하산이 줄줄줄 풀어진 다음에 자유낙하하는 인체의 무게로 인하여 낙하산 하단부로 공기가 들어가면서 낙하산이 펼쳐지게 되어 있는데, 두 번째 4초를 헤아렸지만 낙하산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예비 낙하산을 펼쳐야 하나?"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야 "덜컹"하는 충격과 함께 낙하산이 펴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죠. 자유낙하하던 육체가 낙하산의 저항으로 갑자기 정지하는 느낌과 함께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이후에 제대할 때까지 이십여 회 더 강하를 하게 되었는데, 그 체험을 다시 해보려고 매번 노력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두 번째부터는 보통 "일만, 이만"에서, 잘해야 "사만" 정도에서 고개를 들기도 전에 낙하산이 펼쳐졌다는 충격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대부분 똑 같은 비행기 기종에, 유사한 낙하산이었는데 왜 두 번 다시 시간이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지 못했을까요?

 

 

 

 

또 한 번의 유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황해, 즉 서해에서 "수상인명구조교육"을 받을 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짝을 지어 수영하는데, 제일 꼴찌였던 저는 같은 조의 두 사람을 미처 쫒아가지 못해 엄청 애를 먹고 있을 때였죠.

 

 

바다 한가운데 보트 두 대를 띄워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식사와 낮잠 한 시간 외에는 빙글빙글 도는 것이 훈련이었습니다.

 

 

저도 시체를 찾으러 들어가봤지만, 물속에서는 30cm 앞의 모래사장이 5백원짜리 동전 크기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해안 바닷물은 아주 탁하죠. 그래서, 항상 2명이 1개조로 구성되어 수시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조원으로서 나머지 두 명에게 처져서 억지로 따라가던 저로서는 심장마비나 위경련 등의 위급상황이 발생한다면 아무도 저를 구해주지 못하리라는 걱정이 수시로 들었습니다.

 

 

평형은 머리를 물속에 담궜다가 호흡을 들이마실 때만 잠시 머리를 듭니다. 내 쉴 때는 얼굴을 이마까지 물속에 담궈서 호흡을 내쉬며 목을 편하게 하여 휴식까지 겸하는 자세죠. 그 자세가 기껏해봤자 0.5초 정도 될까요? 그러나, 그 시간에 인생의 생노병사가, 제 과거와 미래가, 제 죽음에 대한 온갖 종류의 두려움이 장편소설로 다가 옵니다.

 

 

부대 내에서 이야기할 때, 학교도 제대로 못나와 온갖 험한 곳으로 끌려다녔던 늙은 중사가 인생의 진리를 이야기하면 그냥 고개만 끄덕였지 마음속으로는 코웃음을 쳤었는데, 그 교육을 받아보니 제가 참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양반은 항상 목숨을 걸고 있었기에 철학이 뭔지는 몰라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박사 학위의 철학자보다도 더 많은 고뇌를 했었던거죠.

 

 

생명을 걸어놓고 뭔가를 하면, 시간이 몇 분의 일로 천천히 흐르고, 생각과 인식은 몇 백배 더 빨리 처리됩니다.

 

 

자동차를 몰면서 시속 200km 이상 밟아보셨나요?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1천미터 이상 올라가보셨나요? 스쿠버다이빙을 해보셨나요? 로프 하나에 의지해서 수직 암벽에 매달려본 적이 있나요?

 

 

 

무엇이든 목숨을 걸면, 아주 짧은 시간동안, 일상에서의 몇 년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나"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짧은 시간에 몇 년 이상 늙어버린 자신을 거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에는 더 멋진 체험으로 더 장대한 "나"를 발견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