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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고급사료에 샴푸로 목욕하는 필리핀의 싸움닭

호린(JORRIN) 2011. 5. 23. 18:31

<!-BY_DAUM->

이 글은 미리 써놓았었는데 인터넷 속도가 안나와 사진 때문에 글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떼네 집에 와서 PLDT의 도움을 받아 올리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바오에 가서 닭싸움을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한마디로 삶이 허무하더군요. 싸움 전에는 그리 까불던 닭이 심지어 10초도 안되어 유명을 달리하시고아마도 왼쪽 발에 달린 칼때문인 것 같더군요. 왼쪽 발뒤꿈치 위에 뒤쪽으로 향하게 단도를 달아주는데 그게 잘 날뛰는 닭에게 굉장히 유리한 것 같아요. 워낙 빨라서 제가 촬영한 동영상을 봐도 잘 구분이 안되네요.

 

경기는 먼저 양쪽 선수들이 주인의 품에 안겨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홍코너∙청코너식 개념으로 경기장 양쪽으로 MELON(있다) WALA(없다)라고 불이 들어온 가로등 비슷한게 서 있고, 두 선수가 그곳에서 주인의 품에 안겨 전의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자가 멜론과 왈라의 소유자 이름과 닭 이름을 소개하고 관중들은 이때부터 돈을 질러대기 시작합니다. 지켜보고 있자니, 특별히 도박용 접수창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안면끼리 혹은 대리인에게 부탁하여 내기돈을 거는데 주로 500페소나 1,000페소를 주고 받더군요.

 

어느 닭을 선택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어느 한쪽에서 멜론을 외쳐대면 반대편에서는 당연히 왈라를 리듬에 맞춰 연호합니다. 그래서, 경기장이 한참이나 시끄럽죠.

 

이틈에 주인들은 중요한 한 가지를 합니다. 바로 닭을 약올리는 것인데, 3의 닭이 한 마리 들어오고, 그 닭을 안고 있는 사람이 한쪽 싸움 닭에게 다가가니까 가슴에 안긴 싸움 닭과 제3의 닭이 서로 쪼으려고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그러면, 싸움 닭과 보조 닭의 주인은 두 닭을 바닥에 내려놓되 꽁지를 움켜쥐고는 서로 싸울 수 없을만큼만 띄어놓고는 두 닭이 전의를 불태우게 합니다. 서로 쪼려해도 거리가 있어서 쫄 수 없게 만드는 거죠.

 

이후에 다시 두 닭을 안고는 싸움 닭 주인은 보조 닭 주인에게 뭐라고 주문을 한 후에 싸움 닭의 얼굴 전체를 가리고 몸을 약간 비틀어 상대 닭에게 빈 공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보조 닭이 싸움 닭 날개쭉지 부위를 몇 번 쪼는데, 필요하다면 닭 주인이 한두번 더 요구해서 횟수를 늘립니다. 싸움 닭에게 쓴 맛을 보여줘서 복수심을 유발하는 모양입디다.

 

 

<노란 옷이 보조 닭 주인입니다. 싸움 닭의 약을 올려주고 있네요>

 

 

이어서 보조 닭 주인은 반대편 닭 주인에게 다가가 똑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데, 이때 닭 주인은 보조 닭이 아니라 상대방 닭 주인에게 부탁하여 상대편 닭이 쪼게끔도 하더군요. 원수가 누군지 확실히 알게 해주려는 모양이던데, 주인이 원하는 결과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ㅎㅎㅎ 

 

드디어 보조 닭이 퇴장하면 대부분의 내깃돈은 이미 서로 다 주고받은 상태가 되고, 연이어 경기 시작을 알리면 메론과 왈라가 바닥에 내려집니다. 경기장 양쪽 끝의 거리는 대략 4 ~ 5m 정도 되는데, 양쪽 끝에 내려 놓기도 하고, 중앙 부근의 표시된 위치에 내려놓기도 합니다.

 

주인의 품에 안겨서는 서로 그렇게 쪼아대려고 헐리우드 액션을 취하던 놈들이 내려서는 그냥 딴짓만 합니다. 마치 바닥에서 뭔가 먹이를 찾으려는 듯한 동작도 하고, 상대 닭 좌우측 1m 옆에 뭔가가 있는듯 딴전을 부리기도 하죠. 이 상태가 짧으면 10여초에서, 심지어 숨죽이고 지켜보는 시간을 거의 3분 이상 끌고 가는 놈들도 있더군요. 빨리 싸우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요. 그렇게 서로 딴전 부리며 스치듯 지나가던 중 한 놈이 갑자기 자세를 바꾸어 공격하면, 공격을 당하는 놈은 펄쩍 날아올라 피하면서 공격하고, 순간 경기장은 하는 함성이 가득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싸움은 1분 안에 끝나게 되고, 심지어 몇 초만에 결정되는 게임도 있었습니다. 허무하죠.

두 놈이 싸우다 한 놈이 지쳐쓰러지든, 두 놈이 다 쓰러지든, 심판이 한 손에 한 마리씩 양쪽 날개를 잡아 들어올려 서로에게 접근시키면, 아직 힘이 남아있는 놈은 상대방의 머리를 한두번 더 쪼게되고, 그러면 심판은 두 놈을 머리가 맞닿을 정도의 거리로 바닥에 내려놓는 시늉을 합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하거나, 곧 숨이 넘어갈 닭은 그냥 바닥에 푹 쓰러지고 마는데, 심판은 두세번 들었다 놨다를 하면서 이미 한쪽이 가망이 없다는 것을 모두에게 확인시켜 주고는 패자는 바닥에 내려둔 채 승자를 들어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패자의 주인은 쓰라린 속을 달래며 죽은 닭을 들어올려 쓸쓸히 퇴장하고, 승자의 주인은 웃으며 심판에게 돈을 건내고, 빠른 시간 내에 퇴장합니다. 경기가 많아서인지 아주 빨리 빨리 진행하더군요. 아마도 필리핀에서 가장 빠른 업무처리과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경기는 매끈하고 신속하게 연결되어 진행됩니다.

 

 

 

 

<이후에 저렇게 상대 닭과 인사를 시킨 후에 곧바로 바닥에 내려놓고 싸움을 시작합니다. 제가 찍은 동영상 중에서 캡쳐…>

 

승자가 퇴장하고, 새로운 닭들이 입장하는 사이에 내깃돈은 정산 과정을 거쳐 두 배로 돌려주든지 혹은 그냥 인마이포켓하든지 하는데, 개인간의 거래다보니 아주 신속히 이뤄지고, 경기장내 대리인이 주선한 경우에도 몇 팀이 안되다보니 경기장 전체의 정산과정이 거의 1분 이내에 마무리되곤 합니다.

 

매일 마주치는 필리피노들이 모두 다 돈이 없어서 빌빌거리던데, 경기장에서는 여기저기서 5백페소짜리 혹은 1천페소짜리 뭉치돈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주고받는 광경에서 필로피노들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경마장에서는 12경주가 이뤄진다죠? 여기서는 아마 하루에 30게임은 족히 될겁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거는 것 같지 않아도 하루면 거의 패가망신 수준까지 갈 수 있겠더군요.

 

 

제 집주인 여동생의 남편이 외항선원인데 일 년에 한두번 귀국합니다. 와이프와 세 자녀의 생활비로 월 3만페소씩 보내주며 돈을 모아서 귀국하면,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닭싸움장에만 가서 삶니다. 그러다가 두세달만에 돈이 다 떨어지면 또 용케 자리를 구해 외항선을 타러 떠나죠. 50이 다되어가는 놈이 월셋방에 살면서도 그런다는 얘기를 들으니 필리피노들이 참 생각없이 산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일본에서 타이어 등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36세의 중국계 사업가도 40여마리의 닭을 키우며 닭싸움에 빠져 사업이 많이 위축된 모양이던데, 그러든 말든 닭싸움에 아주 많은 정성을 들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일요일은 각 지방에서 5 ~ 1천페소 정도의 푼돈이 오가는 경기를 하는 모양이고, 수요일인지 목요일은 세부섬 전체의 전문꾼들이 세부시 북쪽의 Carcar에 모여서 큰 돈이 오가는 경기를 치룬다던데, 사업이 손에 잡히겠어요? 일이분의 닭싸움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면, 누가 힘들게 사업에 몰두하겠습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용산구와 영등포구처럼, 세부시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딸리사이시가 있습니다. 교민신문을 보니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의 4일간 매일 경기가 벌어진다는 광고가 나오던데, 저도 그곳에서 생활비나 좀 벌어볼까요? ㅎㅎㅎ

 

출처 : 가자 아름다운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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