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필119카페 게시글 모음

[스크랩] 체크아웃...

호린(JORRIN) 2011. 5. 23. 18:40

12시경에 맞추어 체크아웃을 했습니다. 모든 짐을 트렁크에 쑤셔넣고 양복만 뒷문 손잡이에 걸쳐놓고는 노트북을 들고 호텔로비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4시 반까지 뭉기적거리다가 15번 항구로 떠날 예정이고요. 시원하겠다, 무선인터넷 죽이게 빠르겠다, 이쁜 데스크 아가씨들이 장난까지 쳐주겠다 뭐 아쉬운게 없는 아주 환상적인 장소입니다. 그것도 무료로요.


슈퍼페리는 오늘 저녁 7시에 출발해서 내일 오후 5시에 도착예정인데, 차를 가져간다고 하니 6시까지 오라고 하더군요. 길이 막혀도 마카티에서 부두까지는 1시간이면 갈 것같은데, 부두에서 입구를 못찾는다든지 보안검사를 한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있을까봐 조금 여우있게 출발하려고요.


간밤에는 총각파티를 하는 심정으로 좀 나돌아다니고 싶었으나, 워낙 강력한 벨비님에게 마닐라오는 날 충격을 받아서 술생각은 쏙 들어가더군요. 그래서, 노래나 들으며 산미구엘 필센 한병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밤 11시경에 피부르고스 거리로 나갔더니 어느 호텔 1층의 바에서 라이브음악이 아주 신나게 흘러나오더군요. 구글을 보니 옥스포드 스위트호텔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들어가서 산미구엘 필센을 시켰는데, 시끄러워서인지 산미겔 라이트의 병뚜껑을 따서 가져왔더군요.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잔에 부어마시는데, 들어간지 5분도 안되어, 노래 한곡도 온전하게 못들었는데 공연을 끝내고 무대를 내려오더군요. 열받습디다. ㅎㅎㅎ


Hey, I came in just before... 라고 외치니 여자 싱어가 낄낄거리며 sorry라고 하더군요. 자기도 미안했던 모양이죠. 그래서, 두모금도 안되는 맥주를 얼른 마시고 계산을 하고서는 웃으며 'You were fishing me. I became a fish'라고 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다시 한번 웃으며 미안하다고 그래요.


그곳을 나와서 Matrix나 가볼까하고 돌아다니니까 바 몇개가 예전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던데, 흥은 그렇게 안나는 분위기더군요. 그래서, 그냥 호텔로 돌아오다가 저쪽에는 뭐가 없나?하는 생각으로 호텔을 지나쳐가니 필리피노들이 가는 Bar and Restaurant에서 라이브음악이 들려나오더군요. 또 들어갔습니다. 손님들이 신청하면 1인밴드가 기타 혹은 전자올겐으로 반주를 해주며 손님이 노래를 부르게끔 해주는 곳이었는데, 나와서 노래부르는 아그들이 왜 그리 패기없이 노래하는지, 별재미가 없어서 한 30분 정도 있다가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호텔 앞은 차량의 진출입이 용이하도록 경사진 진입도로와 나가는 도로가 있는데, 나가는 도로쪽에 비닐 쓰레기 봉투가 몇개 놓여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돌아올 때 보니까 거기에 사람이 엎어져 있더군요. 자세히 보니까 쓰레기 봉투를 풀어헤쳐서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있었고, 호텔 도어맨과 벨보이는 바로 그 사람으로부터 5m도 안떨어진 곳에 서서 웃으며 잡담을 하고 있었고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1시경에 피부르고스로 나가면서 벨비님 사무실 바로 옆에서 구걸하는 젊은이에게 20페소를 주고 지나갔었는데, 얼핏보기에 그 총각 같이 보였습니다. 손을 다치고 다리도 불편한지 엉성한 자세로 길바닥에 앉아있던...


방에 돌아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월급받고 일하는 호텔 청소부에게는 날마다 50페소를 던져주고, 또 호텔 데스크 아가씨들에게도 하루에 500 ~ 1,000페소 정도의 커피와 간식꺼리를 사주곤 했는데, 쓰레기를 주워먹는 사람을 보고는 용기가 없어서 지폐 한장 던져주지 못하고 얼른 자리를 피한 것이 못내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있게 되더군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또다시 고민했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두번 다시는 흔히 말하는 KTV 같은 유흥업소에 가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차라리 그 돈을 아껴서 20페소씩이라도 꾸준히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노라고요. 물론 GRO도 가난하고 불쌍하기야 마찮가지지만, 그래도 그네들은 제가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테니 차라리 길거리 거지에게 조금씩이라도 적선을 하겠노라고 다짐한거죠.


정말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한참을 그 쓰레기를 먹고 있던 거지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우리 옆에 예수나 석가가 와있는지도 모르고 저렇게 방치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지난 월요일밤에 벨비님과의 술자리가 끝나고난 다음에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마사지를 권유하는 떠돌이 마사지걸 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보나마나 호텔방에 따라들어와 마사지하고 잠자리까지 해결하고 갈 아가씨였겠죠. 마사지를 거절하고 비틀거리며 걸어오는데 계속 따라오면서 배가 고프다고 마사지 한번만 받아달라고 애원을 하더군요. 그래서, 패스트푸드점에 데리고 들어가 먹을거리를 사주고 돌아온 적이 있는데, 어제밤에 또 만났습니다. 반갑게 환히 웃으며 인사를 하더니 딱 한번 마사지를 권유하고는 두번 다시 마사지를 권하지 않고 그저 만나서 반가워하는 시늉만 하더군요. 괜히 기분이 좋아서 한참동안 마음이 밝았었는데, 음식쓰레기를 먹는 거지를 보고나니 그 아가씨들 생각은 쏙 들어가버리고 무거운 마음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남아도니 별 영양가 없는 얘기로 횡설수설하고 있습니다.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아니라 쬐끔 가진자와 아예 없는자에 대한 문제와 고민... 이제부터 필리핀 생활이 시작되나 봅니다.

출처 : 가자 아름다운 필리핀
글쓴이 : 구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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