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 4년 필리핀 경험담

2003년 보라카이 소식(7)

호린(JORRIN) 2011. 6. 18. 00:41

18. 화이트비치
화이트비치는 부숴진 산호가루가 쌓여 형성된 백사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고우면서도 무겁다, 먼지도 없고... 우리나라 모래사장에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바람이 한번 불면 음식에 모래가 들어가지만 여기서는 그런 걱정 뚝!이다. 식당에서도 밥 먹는 한쪽 옆에서 조심스레 바닥을 쓰는데, 먼지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점은 너무 빨리 식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석양 무렵에 백사장에 가보면 벌써 다식어서 싸늘하다. 만약 동해안 모래 같으며 저녁에도 따끈따끈 할 텐데…

화이트비치 백사장은 서서히 깊어져 가는데 경사도가 우리나라 서해안보다 심해 남해안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저녁나절이면 가운데 손가락 길이만한 고기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발밑에서 놀고 있을 때도 있는데, 가슴 정도 오는 물속을 걷다 보면 물고기가 발바닥에 밟혔다가 미끄러져 나가는 감촉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19. 푸카(쉘)비치/게이레스토랑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푸카쉘비치라 부르는 푸카비치는 섬의 북쪽에 있는 모래사장이다. 물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모래가 없이 둥근 돌들이 바닥에 30 ~ 40% 정도 깔려 있고, 물살이 거세서 수영하기에는 알맞지 않다. 게다가 숙박시설도 없으니 관광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단지 원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갖고 있다 하여 그 경치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것도 모르고 처음 갔을 때 너무 좋아보여 아내랑 수영복을 챙겨 다시 놀러 갔다가 돈만 내버리고 왔다.

한때는 백사장에 푸카라는 조개가 지천으로 깔려있었다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조개목걸이 파는 아줌마들의 손에서 해골 일부분이 발견될 뿐이다.

식당은 백사장에 붙어있는 식당과 백사장에서 도로를 따라 한 백여미터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식당 등 두 곳인데, 두번째 식당은 안가봤고 첫번째 식당은 두 번 가봤다.

첫번째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면 분위기가 조금 묘한걸 느낄지도 모른다. 종업원이 메뉴를 들고 와서 주문을 받아가면 더욱 이상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고… 나중에 이놈 저놈 다 나오는 것을 보면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아! 저건 놈이 아니라 년이구나. ㅎㅎㅎ 자기네 스스로 한국말로 “나 게이, 호모” 그렇게 말한다. 요염한 자태로 머리를 뒤로 넘기는 넘, 여자 목소리로 “오리지날~~, 비싸~~” 등을 말하는 넘, 가슴이 어느 정도 봉긋하게 튀어나와 있는 넘, 빠삐용에 나오는 게이 상대역처럼 말끔하게 깍은 면도자욱이 얼굴의 1/3을 뒤덮고 있는 넘 등 별 넘이 다 있다. 그래도 그네들이 스스로 게이라 칭하고 한국사람의 이해를 돕고자 호모라고 칭할 만큼 필리핀이나 동남아는 게이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다. 산업화가 덜되어서 관광업 등으로 여자에게 일거리가 많이 돌아가다 보니 여자의 경제력이 남자의 경제력보다 우월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벼운 영어를 구사할 정도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망고쥬스나 한잔 시켜놓고 그네들의 가게에서 파는 목걸이를 흥정해봄도 바람직하다. 한국말과 영어 게다가 교태로운 바디랭귀지까지 섞어서 흥정하는 게이들의 언행에서 배꼽 한두개는 빠질 만큼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걸 즐길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20. 물건의 구매
못사는 나라여서 그런지, 아님 우리나라보다 인심이 넉넉해서 그런지 몰라도, 필리핀에서의 물건 판매는 일견 상도의가 없어 보인다.

푸카비치의 게이레스토랑 앞에서 진주목걸이 등을 들고 다니며 파는 행상 아주머니와 가벼운 흥정을 하다가 맘에 들지 않아서 흥정을 포기하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이 아주머니가 따라 들어와서 계속 이 물건 저 물건을 권하는데, 하필이면 그 가게에도 똑 같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게 종업원은 그 아주머니를 제지하지 않고 자기 물건을 들고와 함께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권해주는 물건이 조금 맘에 들어 가격 등을 물어보며 자세히 살펴보고 있자면, 주위에서 손이 몇 개씩 불쑥 튀어나와 똑 같은 물건을 내미는 것이다. 그래도 기득권을 가진 식당이나 아주머니가 아무런 제지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신기했다.

딸리빠빠 시장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좌판에 놓인 코코넛 크랩이나 새우를 흥정하다가 언뜻 옆의 다른 좌판을 쳐다보면 잽싸게 자기 것을 가르키며 흥정에 나선다. 이런 현상은 길거리의 행상들에게서도 늘 찾아볼 수 있다.

딸리빠빠시장의 끝까지 가면 오른쪽에 공중전화기가 걸려있는 약국이 있는데, 그 조금 못미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야채, 쌀, 각종 부식, 생선, 대하, 랍스터, 코코넛 크랩,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파는 난전이 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Kg 단위로 가격을 흥정한 다음 물건을 고르면, 저울로 중량을 잰 뒤 흥정된 단가를 곱하여 물건값을 산출해낸다. 흥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으며, 해산물의 경우에만 소폭 깍아주고 나머지는 거의 부르는 값이 당일의 실 거래가로 보면 된다.

딸리빠빠 시장 내의 옷가게, 신발가게 등의 공산품점에서는 10 ~ 20% 정도 가격을 깍을 수 있는데, 기념품가게에서는 그 보다 더 깍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당, 해안로 주위의 옷가게, 투어리스트센터, 시장 내 슈퍼 등에서는 일절 깎아주지 않는다.

딸리빠빠 시장을 지나면 오토바이, 트라이시클이 떼를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거기서 약 30m 정도 오른쪽으로 가면 길 건너편에 한국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라면, 김치, 고추장, 소주, 음료수, 각종 과자, 김, 마른 멸치, 통조림, 냉동식품 등을 판매한다. 처음에는 정가대로 받더니 뒤에는 계속 약 20% 정도 할인해주기에 현지인 지배인에게 물어봤더니 그냥 깍아줄 뿐이라고 하여 혼동만 일어났다. 아마 보라카이에 손님이 덜몰리는 한가한 기간에만 할인가격이 적용되는지 모르겠다. 할인이 되던 할인이 안되던 투어리스트 센터에 있는 슈퍼보다 싸고 다양하다.

해안로를 따라 즐비한 노점상들은 예상외로 싼 곳이 많다. 조개목걸이 하나에 20페소 부르는 곳도 많은데, 다 남아도 20페소 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깍냐?라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깍는 재미로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다가 선물용으로 몇 개 샀다.

사람들은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할 경우 선물 때문에 상당히 걱정을 많이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아내는 첫 해외여행이어서 일가친척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면 뭐하나? 사가고 싶은게 별로 없는데…

일단 보라카이의 물가는 다른 지역보다 엄청 비쌌다. 예를 들어, 망고말린것의 딸리빠빠 시장 내 가격은 100g 한 봉지에 70 ~ 75페소, 그러나 배를 타고 까띠끌란으로 가면 세 봉지에 100페소한다. 물론 상품명이 다르지만 먹어본 바로는 오히려 까띠끌란 부두에서 산 것이 설탕이 적어 먹기에 부담이 없었다. 비싸다고 소문난 마닐라 국제공항 내 면세점에서도 100g 한 봉지에 75페소이니 보라카이의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또 한가지는 수공예품은 조잡스럽고, 공산품은 낙후된데다 포장 개념이 거의 없어 선물로 준비하기가 조금 꺼려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코코넛나무로 만든 재떨이, 보석함 등을 구입했는데 선물용 포장이란 것이 신문지로 한번 감싸주는 게 전부였기에 국내에 가져와서 싸구려 티 나는 선물을 건내기가 조금 민망했다.

칠기제품은 우리나라보다 질이 훨씬 떨어지고, 진주는 아무리 봐도 상품성이 있어 보이는 제품이 없었다. 그렇다고 통관도 안될 과일을 사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귀국 전날은 머리가 아프게 돌아다녔다.

비치 샬렛에서 찰스바 쪽으로 가면 두번째 건물에 조그만 수공예품점이 하나 있는데, 이곳의 모든 제품은 유화로 그려진 것으로 상당한 작품성을 띄고 있다. 아내는 조그만 키타 케이스처럼 만들어진 천가방을 두 개 샀는데, 하나에 650페소를 지불했다. 벽에 거는 그림은 한 개 1,000 ~ 1,300페소를 호가하는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상당히 싼 가격이지만 그곳 물가에 익숙해지다 보니 비싼 느낌이 들어서 몇 일간 들러서 6개를 흥정만 하고 결국 못샀는데 한 개라도 사올걸 하는 후회감이 밀려온다.

딸리빠빠 시장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왼쪽으로 7번짼지 8번째 집에서 각종 나무 가공 기념품을 파는데, 막상 안쪽 깊숙히 들어가보면 유화를 전시해놓고 있다. 이층은 유화 전시장으로 꾸며 놓았는데, 이층 작품은 가져오기 곤란하여 쳐다보다 말았고, 일층 벽과 계단에 놓인 소품 위주로 감상을 하다가 결국 10 ~ 12호 정도 크기의 그림을 구입하고 말았다. 800페소를 지불했는데, 그림은 맘에 들지만 유리없이 만든 표구가 조금 불만스럽다. 그러나, 유리가 없는 덕에 공항검색이나 이동 등에서는 상당히 편리했다.

보라카이에서의 물품구입은 우리나라 조그만 시골 장터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가 필요성을 느끼는 것 중 없는 것은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무척 싸다. 그러나 대부분 질이 형편없고, 질 좋은 것은 우리 몸에 맞지 않는다. 챠롱, 여자수영복 등은 색감 등에서 뛰어나지만, 작고 날씬한 그네들 몸에 맞춰 만들어졌기에 몸매가 날씬한 우리나라 여자도 입기 불편할 정도인 그림의 떡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질에 상관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짐을 챙길 때 아차!하고 빠트린 그 모든 것이 딸리빠빠 시장, 투어리스트센터 등에 다 준비되어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건망증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은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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