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전화
필리핀에서 전화를 사용하자면 조금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는 001, 002, 00*** 등 접속번호 차별화를 통하여 이용할 통신회사를 구분하지만, 필리핀은 특정 통신회사의 전화카드를 사서 그 회사로고가 부착된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통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으로 전화할 경우에는 어느 통신회사 전화기를 이용하든 항상 0082로 시작하면 된다.
SMAT라는 통신회사를 이용하면 대부분의 절차가 우리나라와 똑같지만, 그보다 흔한 PLDT 전화카드를 이용하여 전화를 할 경우에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고 난 다음 “speak” 버튼을 눌러야 이쪽 말이 상대방에게 들림은 물론 통화료도 지급된다. 따라서, 말이 잘 안통해 주눅이 들어있는데다가 전화기에서 상대방이 “헬로?”나 “여보세요?” 몇 번하다가 끊어버리면 상당히 황당하다. 항상 “speak” 버튼 누를 준비를 해놓고 전화를 걸 일이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카드를 집어넣으면, 번호를 누르든지 문자를 입력하라고 나온다. 공중전화에서도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모양이지만 실험 삼아 해볼 곳이 없었다.
한때의 우리처럼 필리핀 아그들도 너도 나도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과시하길 좋아한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 소형 전자계산기 모양의, 즉 폴더도 아니고, 플립도 없는 단순한 모양의 전화기다. 거기다가 흑백이고. 그래도 휴대폰 자랑이 대단하다. 할 수 없이 죽은 휴대폰을 꺼내서 전원을 켜 보여주면 뿅가고 만다. ㅎㅎㅎ
이곳 아그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만 할뿐 통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고? 여기는 전화비도 비싸고 이네들의 하루 수입이 100페소가 안되기 때문에 건당 1페소의 문자만 주고 받을 뿐이고, 심지어 문자 보내는 것도 잔고가 없으면 안되기에 아예 받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아그들도 많다.
스테이션 3에서 딸리빠빠시장 쪽으로 가다보면 중간쯤(약 70m 이내)에 통신회사 사무실이 있다. 이곳을 들어가면 사람들이 전화서비스를 신청하고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전화가 연결되면 부쓰에 들어가 상대방과 통화를 하는데, 아마 컬렉트 콜만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그냥 궁금해서 한번 들어가보고 나왔다.
22. 마사지
해변을 거닐든 비치의자에 누워있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통일된 복장을 입은 필리핀 아줌마들이 여자들에겐 “마사지 맘?”하고 외치고, 남자에게는 물론 “마사지 써?”라고 외친다. 아내가 오기 전에 호기심에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백사장에 혼자 누워 받기가 너무 창피해 망설이다가 결국 주인 아들을 통해 마사지사를 방으로 불러 받아봤다. 여기서는 한국사람들이라면 무조건 250페소를 부르는데, 깍으려는 시도는 해보지 않았다.
뒷날 아내가 오고 난 다음에도 방으로 마사지 걸을 불러 마사지를 몇 번 시켜줬는데, 이곳처럼 비싼 호텔이나 리조트는 경비실에 등록 자격증을 맡기고 들어가고, 나가면서 50페소를 지불하고는 자격증을 찾아 나간다. 따라서, 이 50페소를 누가 지불하느냐를 사전에 협의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지급했다. 따라서, 300페소를 지불했는데, 꼭 손해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해변에 누워서 마사지를 받을 경우, 쭉쭉빵빵한 아가씨들이야 투피스 비키니를 입고 드러누워 서비스를 받으면 되지만(백인 여성들은 아예 웃통을 벗어 제키고 서비스 받는다),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우리 아줌마들은 구석 구석 마사지 받기가 어렵다. 그래서, 마사지사를 방으로 불러 같은 여자니까 홀딱 벗고 마사지를 받는게 차라리 편하다. 코코넛 오일을 발라가며 마사지를 하는데, 해변보다 모래도 적게 묻기에 껄꺼러운 느낌도 덜하다.
해안로에 있는 좌판에 보면 소주병 크기의 병에 참기름 같은 것을 넣고 파는데 이게 코코넛 오일이다. 한병에 100페소 이상 부르는데, 80페소에 흥정해서 한 병을 샀다. 반 병씩 덜어 팔기도 하는데, 코코넛 오일 한 병을 마사지사가 사용하면 적어도 100명은 마사지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우린 코코넛 오일을 한 병 사서, 해변에 비치의자와 비치타올을 설치해 달라고 해서는 서로서로 마사지를 해줬다. 리조트 지배인부터 해서 직원들이 나와서 낄낄거리며 쳐다보고, 마사지 아줌마들도 와서 깔깔거리며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마사지 맘?” 해가면서 아내에게 마사지를 해줬다. 마사지 경력 몇 년에 남자가 여자 마사지하는 꼴은 처음 본다면서 아줌마들이 놀렸지만, 그게 대순가? 공개된 장소에서 내 꺼 기름 발라 엎치락 뒤치락 해가며 내가 애무해 본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경험인데? ㅎㅎㅎ
그 다음부터는 우리 방에서 서로 코코넛 오일 마사지를 해줬다.
조금 밖에 사용하지 않은 코코넛 오일이 아까워 우리나라에 갖고 왔더니 기포가 생겨 굳어 있었다. 아마 비행기가 고공으로 올라갔을 때 기온이 낮아 굳어졌다가 우리나라 기온도 낮다 보니 그대로 굳은 모양이었다. 욕실에서 따뜻한 물에 담궈 병을 잠시 녹이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또 써먹어야지. ㅎㅎㅎ
야간에 혹은 새벽에 해안로를 걸어가보면, 낮에 보던 그런 복장이 아니라 자유복장의 아가씨, 아주머니가 “마사지 써?”하고 유혹을 한다. 이 아가씨, 아줌마는 여자 손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남자만 쳐다본다. 가격은 300페소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이네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단계이니까. 이네들은 마사지 후 섹스를 유도하지만 남자가 넘어가지 않으면 전문용어로 blow job(?)이라 부르는 “쏙쏙”(한국사람에게서 배운 단어라는데, suck을 칭하는 듯함)이나 손으로 하는 행위라도 한번 하자고 꼬신다.
목마른 새벽에 주인을 깨우기도 그렇고 해서 문 안닫은 식당이 있나?하고 나섰더니, 한 여자가 기어코 식당 안까지 따라 들어와서 마사지나 섹스를 하자고 꼬신다. 요지부동으로 버텼더니, 세부에서 돈벌려고 보라카이에 왔는데 3일 동안 마사지 손님이 없어서 배가 고파 죽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측은지심에 할 수 없이 마사지를 받겠다고 말하고는 시간을 물어보니 이제 겨우 5시 20분이란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무드잡고 마사지하면 색기가 감돌 것 같아서, 8시에 내가 묵고 있는 코티지로 오라고 하고는 헤어졌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 삼아 날마다 두 번 하는 1Km 수영을 하고 샤워 후 식사를 하니 아침부터 잠이 솔솔 쏟아졌다. 해먹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더니 어느새 옆에 그 여자가 와서 마사지하자고 인사를 한다. 방에 들어가 마사지를 받아보니 역시 마사지 실력을 완전 젬병이다. 그냥 열심히 문지르는 수준이다. 물어보니 세부에서 돈벌이하다가 너무 더워서 보라카이로 왔단다. 28세 처녀라지만 우리나라 30대 중반 아줌마 같은 외모로 자기가 이쁘다고 생각하는지 자꾸 추가 서비스를 유혹하는데 거절하기가 너무 미안했다. 먹고 살자고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23. 인터넷
인터넷 강국, 아이티 강국 한국에 있다가 필리핀에 가보니 제일 답답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아내랑 인터넷으로 소식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피씨방을 찾기도 어렵고 설사 찾는다 해도 한글 지원이 되는지가 궁금했다.
마닐라의 팬션 나타비다드 근처에는 한국 피씨방이 있는데, 속도나 언어지원 문제에 있어서 전혀 불편하지 않다. 한국 피씨방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관리를 하고 있고, 기본적으로 한글 윈도XP를 깔아 놔서 마치 한국의 피씨방에 있는 것 같다. 가격이 시간당 50페소로 속도에 비하여 매우 저렴한 편이다.
다이야몬드 호텔은 사거리의 한쪽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사거리의 대각선 코너에는 건물을 신축하고 있고, 그 건물의 한쪽 옆 건물을 보면 2층에 Cyberpia란 인터넷 카페 간판이, 1층에는 미니스톱이란 편의점이 있다. 코너 건물의 다른 쪽 면을 따라 한 건물을 건너가면 그곳이 바로 팬션 나타비다드다. 팬션 나타비다드 카운터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싶다고 얘기하면 사이버피아 전단지에 있는 약도를 보여주며 위치를 설명해줄 것이다.
보라카이에는 한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섹스(Secs)레스토랑 안쪽에 있는데 하루 종일 지나다니면서 지켜봐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 시간당 50페소. 쪽바리가 운영하는 섹스레스토랑은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코너가 스쿠버점, 해변쪽이 레스토랑, 안쪽이 피씨방이다. 그래서 식당이나 스쿠버점을 통해서 들어가는데다 한글이나 일본어가 되는 피씨가 하나 밖에 없고, 유독 그 피씨만 모니터가 흑백이어서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또 한 곳은 투어리스트 센터에 있다. 사용료는 시간 당 70페소. 처음 갔더니 시간 당 30페소 였는데, 3일 후에 전격 기습인상을 단행했다. 속도는 우리나라 56K 모뎀보다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본 설치가 영어 윈도우XP이기에 한글 폰트를 띄우려면 조금 조작을 해야 하는데, 종업원이 마우스로 조작하는 것을 한두번 보면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작업하려면 주의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에어컨 밑에 앉지 말 것. 쉽게 감기들 수 있다.
둘째는 너무 긴 편지를 쓰지 말 것. 혼자서 자기 문장력에 감탄하고 있는데 전기가 나가면 그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보라카이는 예고 없는 정전이 하루에 한두번 꼭 있다. 노벨 작가가 아니더라도 머리를 쥐어짜내 만든 편지가 정전으로 날라가 버리면 그 허무함이 오죽하리오?
24. 가라오케
보라카이에 있다보면 한국음식보다 한국노래가 그리울 때가 더 많았다. 술집이나 레스토랑에서 항상 팝송 위주의 음악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동안 보라카이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오쪼 오쪼(우리말로 어깨를 으쓱으쓱)”라는 노래가 나왔다. 필리핀 인기 캡송이다. 상체를 구부려 무릎에 두 손을 올려놓은 뒤, 어깨를 으쓱으쓱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를 뒤로 흔드는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다. 그리고 이삼일에 한번은 미나의 “전화받아”가 나온다. 다른 노래는 안나오고 유독 그 노래만 나오는데, 한국 노래 CD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님 걔네들 정서랑 맞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라디오나 식당에서 한국 노래를 들을 수 없으면 할 수 없이 직접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라오케로 갔다. 필리핀 가라오케는 완전 옛날 가라오케 그대로다. 중앙의 조그만 무대에 한 여자가 나와서 마이크를 들고 진행을 하고, 빙 둘러싼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노래를 신청하면 한 테이블 당 노래 한 곡씩 부르게 해준다. 한국 노래를 신청하겠다고 하면 몇 번이나 복사했는지 흐릿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복사 용지를 끼운 노래목록집을 가져다 준다. 몇 곡 안되는 구닥다리 노래 중에서 맘에 드는 노래 찾기는 로또 당첨확률과 비슷하다.
술값은 일반 식당이나 바의 술값과 비슷하다. 따라서, 맥주 한 병이 40페소 정도이고, 좋은 양주 스트레이트는 잔에 130 ~ 150페소 정도 한다. 그러나, 다른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도 좋은 양주는 먹을 수 없다, 비치해둔 게 없으니까.
아내더러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우리나라 노래 씨디를 가져오라고 했더니 최신 댄스곡이 수록된 씨디를 하나 사왔다. 섹스에 가서 그 씨디를 틀어 달라 하고는 둘이 술을 한잔하는데, 그날 따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집에 많이 와 있어서 아늑한 분위기에서 술 한잔하려던 희망이 깨졌다. 혹시 secs 레스토랑에 가서 한국노래 듣는 사람은 그 씨디를 우리가 기증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시기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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