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 4년 필리핀 경험담

2003년 보라카이 소식(6)

호린(JORRIN) 2011. 6. 18. 00:40

 

15. 호핑
혼자 싸구려 숙소에 있을 때, 옆 방에 있는 필리핀 여행객들과 함께 호핑을 가 본 적이 있다. 자기네 넷이서 700페소에 예약을 하고 왔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초대하기에 100페소를 내고 따라갔다. 오후에 세 시간 정도 돌아다녔는데, 남서쪽 로키 비치 앞에서 1회, 북서쪽 발랑가이 비치 앞에서 또 한 번 스노클링을 했다. 우중충한 색깔에 별로 볼 게 없어서 참 이상하다 했는데, 나중에 한국인 여행사 직원에게 들어보니 보라카이에서 약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는 산호초는 다 죽어서 볼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푸카 비치(현지인들은 푸카 쉘 비치라고 하면 못알아 들음)까지 배를 타고 한 번 돌았다는 것과, 내가 성게 두 마리 잡았다는 것, 필리핀 아그들과 사진 몇 장 함께 찍었다는 게 큰 소득이었다. 물론 뱃삯 100페소와 팁 100페소 등 내가 200페소를 분담하고, 저녁과 사진 현상비 및 가라오케 비용으로 약 2,000페소를 내가 추가로 인심 썼으니 그네들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아내가 오고 나서 호핑을 한 번 더 갔는데, 이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보라카이섬 주변을 완전히 일주하는 조건으로 1,000페소에 계약했다. 한 푼도 안깍는 대신 선장, 조수 그리고 나를 찍은 삐끼(해안로를 걸어가면 수시로 두 가지 문장이 들린다. “호핑 써?”, “마사지 맘?” 간혹 가다 “낚시?”라는 단어도 들리는데, 남자는 주로 호핑을 호객 행위 한다) 등 세 명이 우리 부부를 왕과 왕비처럼 시중 드는 조건이었다.

우리의 마음이 내킨 어느날 아침, 나는 예약돼 있던 삐끼를 불러서 항해 준비를 지시하고 같이 시장에 가서 쇼핑을 했다. 우리 부부 두 사람과 세 시종을 합친 다섯 사람이 충분히 먹을 양을 구입하여 점심 때는 이들을 불러 같은 식탁에서 같이 먹었다.

대부분의 경우 관광객이 식사를 하고 잠시 쉬고 있으면, 그 남은 음식으로 이네들이 식사를 하게 되는데, 애초에 이들 몫의 음식을 구입한 것도 그렇지만 같은 식탁에서 먹은 것도 파격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먹는 바로 옆에서는 가이드와 함께 온 한국인 신혼부부 몇 쌍이 선장 등이 날라다 주는 음식을 자기네끼리만 먹고 있었다. 누가 잘하고 못했다는 걸 얘기하는게 아니니까 참고로만 하도록…

출발 후 첫 다이빙지로 섬의 남쪽 카그반 비치 앞에서 스노클링을 했는데, 예전 포인트 보다는 산호가 조금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찾아간 크로크다일 섬 앞은 물결이 세서 그렇지 산호가 많이 살아 있었다. 빵조각을 조금 던지자 조그만 열대어들이 몰려드는데 내가 본 장면 중에서는 제일 좋았다. 내가 스노클링하는 동안 이상한 사람이 조그만 무동력선을 타고 배에 왔다 가더니, 내가 물밖에 나가자 다시 다가왔다. 알고 보니 입장료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출발할 때 왠 여자가 다가와서 영수증 끊어주며 받아간 외국인 호핑 인허가비, 크로클다일섬 잠수포인트 입장료, 크리스탈코브섬 입장료까지 대략 인당 150페소는 준비해야 한다.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크리스탈 코브 섬을 포함하여 모든 곳에서 안내인 등 현지인의 입장료는 안 받는다는 것이다.

섬의 북쪽, 동쪽 및 남쪽은 조류가 너무 세기 때문에 어지간한 수영실력으로는 안들어가는게 좋을 듯 했다. 우리는 점심 먹고 난 다음에 다시 크로크다일섬 앞에서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는데, 파도가 높아서 포기를 하고 다시 섬의 서쪽인 화이트비치 쪽으로 향했다. 아내는 멀미가 오려고 해서 비치 타올을 뒤집어쓴 채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잤는데, 뒤에서 계속 밀려오는 2미터 이상 되는 큰 파도를 봤으면 아마 공포감에 많이 떨었으리라 생각되었다.

돌아오다가 파도가 없는 서남쪽 죽은 산호의 바다 로키비치 앞에서 다시 스노클링을 했는데, 물살이 약해서 아내가 무척 좋아했다. 참고로, 대부분의 관광객이 머무는 화이트 비치 앞쪽은 내가 있는 동안 두 번이나 지나간 태풍에도 파도가 거의 일지 않았다.

다시 이동하는 도중 스테이션 3 앞 약 1Km 떨어진 해상에서 배가 기관 고장으로 멈춰 섰다. 아까도 잠시 고장나 멈춰서는 바람에 아내가 할 수 없이 잠을 청했는데, 또 고장이 나니 마음이 조급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아내의 속이 또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아내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서 바다에 들어갔다. 내 어깨를 뒤에서 두 손으로 잡게 하고는 육지까지 헤엄쳐서 나오니, 그제서야 배를 고쳐서 뒤따라 왔다. 딱히 더 둘러볼 시간도 없어서 기관고장으로 손해 본 시간에 대해서 잔소리 좀 하려다가 그냥 천페소를 줬더니 팁을 바라고 있었는지 “천 페소 밖에 안 줘?”하고 볼멘 소릴 한다. 그래서 걔는 올 때까지 찍혔다. ㅎㅎㅎ 그 다음부터는 제트스키나 패러세일링을 다른 아그들 시켜서 예약했다. 직접 흥정해 본 바로는 내가 예약하나 필리핀 아그들 시키나 가격이 똑같으니까 공식적인 중개수수료 챙겨먹으라고 인심 좀 써줄 수 있었는데, 그 아그는 한마디 말로 몇 백페소 이상 손해 봤을 테니 아무튼 사람은 말을 잘하고 볼 일이다.

호핑을 하든 리조트 앞 바다에서 놀든 좋은 물안경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호핑 시에는 배에서 미리 준비해둔 스노클 장비를 챙겨주지만, 리조트 앞 물속에서 놀기 위해선 별도로 하나를 구입해야 하는데, 9,000원 정도 주고 산 스노클장비와 2,300원 주고 구입한 물안경은 다 내버리고 왔다. 너무 조잡해서 물이 들어오거나 얼굴이 아파 보라카이에 있는 동안만 아까워서 사용했을 뿐이다. 뒷날 찰스바 바로 옆의 다이빙샾에서 파는 것을 보니 제대로 된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을 사든지 아님 미리 준비해가길 권하고 싶다.

우리가 묵은 리조트는 75마력 엔진 두 개짜리 쾌속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까띠끌란에 석유사러 갈 때 승선해본 적이 있다. 일반 모터보트는 잽이 안될 정도로 빠른 배였는데, 거기에 라이프 자켓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내는 그걸 빌려 착용하고선 평영을 배우며 놀았는데, 깊은 물에 대한 저항감이 없어서 일단 베리 굿이었다.

호핑이나 이동 등으로 방커를 타면 법 규정 때문에 배에 비치된 라이프 자켓을 반드시 착용하길 권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만다.

16. 기타 해양레포츠
식구들 비행기표까지 다 예약했다가 우리끼리만 필리핀 온 것이 못내 맘이 아파서, 그리고 둘이 방해받지 않고 오붓이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우린 해양레포츠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맘을 고쳐먹고 귀국 전에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만 타보기로 결심했다. 특히, 패러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여 몇 번이나 시도하였지만, 그 시간대에는 항상 예약이 넘쳐나고 있었고, 간신히 예약이 성사된 날은 예고없는 강우로 인하여 두 번 다 취소되고 말았다. 1인 15분에 $50, 두 명이 한꺼번에 비행하는 경우(탠덤이라고 함)에는 $90였는데, 1달러 당 54페소로 환산하여 4,860페소를 요구하였다.
제트스키는 수상 오토바이로 작동 원리가 간단하고 안전하여 누구나 탈 수 있는 레포츠기구인데, 아내를 뒤에 태우고 고속으로 질주했더니 무섭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몇 일 뒤까지 온 몸이 뻐근해서 무척 고생했다. 바다 한가운데에 띄워놓은 나무집까지 모터보트로 데려다 주는 서비스를 포함한 요금이 30분에 1,200페소.

직접 레포츠센터에 가서 흥정해본 것과 삐끼나 리조트 지배인을 이용하여 흥정해 본 결과 공식가격은 똑같이 적용되었다. 삐끼들에게 공식수수료가 지급되느냐 지급되지 않느냐는 레포츠센터에서 걱정할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해안로를 따라 걸어다닐 때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하는 삐끼들 중 맘에 드는 삐끼를 골라 예약을 지시했더니 날아갈 듯이 기뻐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17. 트라이시클
화이트비치 해변을 따라 해안로가 길게 뻗어 있는데, 이 길로는 차가 다닐 수 없다. 오로지 걷던지 자전거로만 다닐 수 있는데, 예외가 있다면 경찰 순찰차, 쓰레기 청소차, 공사용 트럭이다.

택시가 없는 보라카이 내에서 먼거리를 이동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트라이시클이 유일하다. 자전거를 트라이시클처럼 만들어 다니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장거리에 불편하므로 이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트라이시클이 해안로를 못다니면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결책이 해안로와 거의 평행한 도로가 약 50m~ 100m 뒤쪽에 별도로 있다는 것이고, 트라이시클은 이 곳만을 다닐 수 있다. 그리고 이 길에서 스테이션 1, 2, 3와 투어리스트 센터 옆으로 난 연결도로를 통해 해안로 부근까지 트라이시클이 들어올 수 있다. 따라서, 만약에 스테이션 3에서 스테이션 1로 이동한다면, 방카라는 배를 이용하여 가는 방법과, 연결도로로 들어온 트라이시클을 타고 뒤쪽 도로를 이용해 이동한 다음 다시 연결도로로 스테이션 1 부근까지 접근하여 내린 뒤 조금 걷는 방법, 해안로로 자전거트라이시클(트라이패드)을 타고 가는 방법 및 걷는 방법의 네 가지가 있다.

트라이시클은 시민들의 발인데, 앞좌석에 2명, 뒷좌석에 4명 정도 앉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있는 사람은 뒷좌석 등받이 위에 걸터앉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으므로 정원은 무한정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지나다니는 트라이시클이 있으면 무조건 올라타고 인당 5페소를 내는 것 같았으나, 관광객은 트라이시클을 타기 전에 흥정을 하고 타는 게 관습이 되어 있고, 또 이런 경우에는 필리핀 사람들을 합승 시키지 않는다.

스테이션 1에서 스테이션 2까지 50페소 부르는 것을 30페소에 계약하고 간 적이 있는데, 새로 만든 트라이시클이라 매연이 없고, 승차감도 아주 좋았으며,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40페소를 줬고, 다음날 시간 당 150페소에 대절하기로 했다.

이튿날 대절한 트라이시클을 이용하여 푸카비치를 가는데, 운전수가 어느 건물이 매물로 나왔는데 경치가 좋다고 보고 가자고 꼬셔서 잘 둘러봤다. 그런데 거의 다가서 또 다시 그런 얘길 하길래 전략을 눈치채고 그냥 가자고 했다. 이 양반이 느긋하게 남들에게 양보 다해주고 가기에 성격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비싼 호구를 잡았으니 시간을 길게 가져가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 돌아갈 때도 도로공사에 발이 묶여 한 이십분 정도 서있었은데 이 양반은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까지 부르고 난리가 났다. 어쨋거나 왕복 두시간 이십분이 걸렸는데, 삼백 오십페소 달라는 걸 삼백페소만 줬다. 처음으로 약속을 어기고 돈을 깍아 봤다. 그대신 내일 다시 가는데, 데려다 주고 나중에 데리러 오는 조건으로 얼마에 할래? 그랬더니 200페소 부른다. 100페소를 고집했더니 결국 100페소에 오케이 한다. 그러니 오늘 내가 얼마나 호구짓을 한건가? 두 번 왕복에 100페소인데, 오늘 우린 한 번 왕복에 기다리는 시간 약 한 시간, 거기다 음료수도 사주고 300페소나 줬으니…

어쨋거나 돌아올 때 보니 길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리 트라이시클을 보고 계속 일어났다. 같이 타고 오려는 사람들인데, 푸카비치에서 화이트비치쪽은 다니는 트라이시클이 적어서 타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사양반이 호구에게 책잡힐 일을 할 이유가 없다. 나도 언덕길에서 비실거리며 시간 끌 것이 뻔한데, 그 사람들 태우라고 얘기할 이유가 없었으니, 불쌍한 건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트라이시클의 오토바이는 주로 일제 90cc엔진 같아 보였는데, 거기에 무거운 철제 트라이시클을 부착하고 돈의 유혹에 넘어가 심하면 열명까지 태우고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악세레이터를 과도하게 당겨야 한다. 부하를 못이긴 엔진은 쉽게 고장이 나고, 그래서 대부분의 트라이시클은 항상 꽁무니에 매연을 달고 다닌다.

다음날은 일기가 안좋아 푸카 비치에 가질 못했고, 며칠 후에 100페소를 부르는 다른 트라이시클을 이용하여 편도 50페소에 갔는데, 우리가 간 거리는 잘 몰라도 시간은 적어도 20분 이상 걸렸다. 따라서 상당히 먼 거린데, 그 거리를 우리돈 1,150원 정도에 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답이 안나왔다. 도대체 물로 가는 오토바이도 아니고, 아니 물로 간다고 하더라도 트라이시클의 감가상각비와 운전기사 밥값은 나와야 할텐데 저 돈으로 어떻게 수익을 내나? 하는 생각에 맘이 많이 괴로웠다. 할 수 없이 또 다시 팁으로 20페소를 더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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