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나

위장병

호린(JORRIN) 2011. 9. 28. 22:22

군에서 근무할 때 이야깁니다. 쫄병이어서 남들보다 모든 것을 더 열심히, 더 많이 할 때였습니다. 야간 근무를 세워도 꼭 0시 ~ 02시 혹은 02시 ~ 04시 외곽초소 근무를 세우고, 아침에 일어나면 급식부터 청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게 바쁘고,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이 되면 내무반청소, 급식, 식기청소에다가 자발적인 훈련(사격, 태권도 등)까지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바빴으니 힘든 졸병생활도 별 어려움 없이 지나칠 수 있었겠죠.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요령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음주였습니다. 아무리 졸병이지만 술에 취하면 새벽근무로 바꿔주는 자상한 고참들 덕분에 몇번 덕을 보고 난 다음에는 아예 주특기를 음주로 바꿔버렸죠. 저녁이면 할일 다 해놓고 왕고참들과 술마시고 한쪽 옆에서 자고있으면 점호열외에 새벽근무의 특권이 주어지니 날마다 술을 안마실 수가 없었죠. 뭐 그런 군대가 어디있냐고 궁금해하지 마세요. 제가 근무할 때만의 특별한 경우였고, 제가 고참이 되어서는 그것도 불가능해졌으니까요.


어쨌거나 술을 마시다 마시다 너무 힘이 들어서 딱 100일(중간에 휴가 포함)이 되는 날 결심을 했죠. 내일부터 술을 끊는다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습니다.


술 끊는 날 저녁에 싱숭생숭하지만 그냥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깼습니다. 시계를 보니 거의 자정 정도... 그래서 다시 잠들고, 배가 고파 다시 깨보니 새벽 2시, 다시 깨보니 새벽 3시, 3시 반, 3시 50분, 4시...


새벽근무를 대신 서고나서 6시 점호가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 얼른 배식을 하고 밥을 한숱가락 떠넣는데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배속에 불이 나는듯 했습니다. 물도 못마실 정도로 고통스러웠고요. 할 수 없이 잔밥을 내버리러 갔더니 그 냄새에 속이 역겨워 다 넘어오려는듯 했고요.


결국 그날부터 몇일간 밥을 먹지 못하고 억지로 훈련에 참가했죠. 간신히 물에 말아 조금씩 먹을 때도 있었고요. 부대내 군의관을 만나봤더니 돌팔이가 아니랄까봐 간장질환이 의심스럽다고 해요. 그래서 그 내용과 증상을 적어서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모처럼 편지를 쓰면서 죽는 소리를 해놨는데 엉뚱하게도 간장약이 아니라 위장약이 보내왔더군요. 그리고, 그 내용은 '약사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위장에 빵구가 났을 때(위궤양)의 증상과 동일하다고 하더라'라는 내용이었죠.


8개월에 한번 나가는 휴가와, 일년에 한번 정도의 외박. 일년에 8개월 이상의 야외훈련 및 준비기간, 부대내에 있을 경우에는 끊임없는 훈련과 각종 측정(시험)... 달리 방법이 없어서 보내준 약을 복용했더니 거의 한달쯤 지나서 제반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중간에 군의관이 어머님의 편지와 약을 보더니 한마디 하더군요. "너는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어떤 병이든 오래 끌지 않을 것 같다"라고요.


복학 후에 예비역이라고 어린 아그들의 보좌를 받으며 술자리를 많이 가졌는데, 꼴에 특전사 나온 놈이 술 몇잔에 무너졌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개강파티와 같은 경우에는 한자리에서 쐬주 10병 이상도 마셔봤습니다. 그러다보니 또 위장 빵구.


이번에는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수 있다는 어머니가 계시니 한결 편하게 넘어갔죠. 아침마다 양배추를 맨손으로 강판에 갈아 생즙을 내어 주면, 가족이나 나라를 지키다 부상을 입은 것처럼 맛타령해가면서 못이기는 척하고 받아 먹었는데, 워매 양배추라는 것은 일주일도 안되어 또 다시 술을 마셔도 될만큼 워낙 강력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자식이니까 이렇게 해먹이지 남편이라면 때려 죽여도 못해먹이겠다"


이후로도 두번 더 위장에 빵구가 났는데, 두번 다 아주 쉽게 넘어갔습니다. 뭐 말이 그렇다 그거지 처음 몇일은 뱃속에 불이 나는 것 같아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죠. 다 지나고 나니 고통은 사라지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요.


아는 분 중에서 위장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제 경험을 얘기해줘도 그 양반은 위장병과 결혼한 양반입니다. 성격이 워낙 꼼꼼하고, 내성적이고, 게다가 고민을 달고 사는 분이어서요. 지금이야 녹즙기라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기껏해야 믹서긴데 와이프가 제대로 정성들여서 해주지도 않을뿐더러 본인 성격도 아주 큰 역할을 하였지요.


결론은, 위장병이든 뭐든 일단 낙천적이어야 질병이 싫어한다는 것이고, 위장병에는 양배추가 좋다는 것이죠. 평소에도 삶은 양배추로 쌈을 싸서 즐기다보면 위장이 아주 좋아진다죠?


약은 최소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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