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혼자 있으면 책 읽기도 싫고, 운동하는 거나 움직이기도 싫고, 모니터 앞을 떠날 줄 모른 채 자꾸만 HTS에 눈이 고정되어 주식 매매를 충동적으로 하고 싶기에, 열대성 저기압이 가라앉자마자 페리를 타고 찾아간 보홀.
이미 보홀은 자동차를 갖고 두 번, 뚜벅이로 한 번, 경유지로 두 번을 다녀왔으니 지겨울만도 하건만, 막상 보홀의 북쪽 절반은 한 번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관광객들은 모조리 남쪽 탁빌라란을 거쳐 팡라오섬만 다녀오기 때문이죠.
태풍이 만들어지면서 이곳은 강한 바람이 며칠간 몰아쳤었는데, 그래서 배가 다니지도 못했을뿐만 아니라 페리가 차를 싣다가 차량 진입난간이 부러지는 바람에 많은 차들의 발이 묶였고, 그 덕에 저도 어렵게 보홀에 갔고, 게다가 너무 늦게 도착하여 엉뚱한 곳에서 필리피노들과 술자리를 벌이다 잠을 잤어야 했을만큼 이번은 시간 낭비가 많았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보홀섬에서의 드라이브는 거의 환상적이었죠. 지나가는 차들이 없어서 마치 낙옆이 잔뜩 깔린 가을의 한국 시골길을 달려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도 초코렛힐즈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주말이어서인지 예전의 고요함이 없어서 호텔 그 자체로는 별로 감동이 없었지만, 약 8개월만의 방문이었는데 그래도 프론트 아가씨들이나 식당 아가씨들이 모조리 저를 기억하고 있어서 12월의 그날을 되살리며 대화한 것이 제 기분을 아주 감동적으로 만들어 주더군요.
쵸코렛힐스 전망대에서 뒷배경을 응용하여 찍은 다양한 사진들...
쵸코렛힐스 산들은 보다시피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생명력이 질긴 몇몇 풀들만 자랄 수 있나봅니다. 그래서 비바람에 깍이어 둥근 민둥산 모양으로 장관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작년보다 나아진 점은 저렇게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차양막을 설치해놨다는 것인데, 이번 바람이 워낙에 거세어 중간중간 지붕 날아간 곳이 제법 되는군요.
지난 번까지는 별생각없이 스쳐지나갔던 곳을 이번은 제대로 찾아서 들어가봤습니다. 이름하여 테지어 보호구역
간판 한쪽 옆에 새겨진 동물이 웅크렸을 때 몸길이가 10cm 정도되는 조그만 원숭이로 이름이 테지어 혹은 안경원숭이입니다. 멸종위기종이어서 저렇게 보호구역을 만들어 두었죠.
낮에는 자고 밤에는 돌아다니며 먹이를 섭취하는데, 인간 숫컷들보다 나은 점은 아무리 먹이가 맛있고 배부르더라도 잠은 꼭 집에 와서 잔다는 것이죠.
관광객들이 많아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네요. 아그들이 놀랠까봐 사진 찍을 때 후레시를 터트리지 못하게 하므로 찍기는 많이 찍어도 잘나온 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묘기를 보여주는건지 손 놓고 자는 모습.
안경원숭이의 머리는 360도 회전이 가능합니다. 오른쪽을 보다가 더 돌려서 뒤를 보다가 계속 돌려서 왼쪽까지 보다가 더 돌려서 다시 앞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원숭이 한 마리당 한 명의 시중꾼이 달라붙어서 관광객들이 쓸데없는 짓을 못하게 감시하므로 원숭이 크기야 작지만 찾기는 아주 쉽습니다.
점심을 먹을겸 시간 맞춰서 로복강에 도착했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선상에서 뷔페 식사를 하면서 노래도 듣고 경치도 보고 민속공연을 보는 로복강 투어는 1인당 400페소(유람선 300, 관리비? 100페소. 한국돈 약 11,000원)인데, 뭐 어지간한 호텔이나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는 저렴하고 분위기도 좋죠.
강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저런 배를 타고...
라이브밴드의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뷔페식사도 하고...
저렇게 민속공연하는 수상무대에 접근하여 그네들의 공연도 관람하고...
기분 내키면 저렇게 뛰어들어가 함께 춤추기도 하고...
이곳에 와서 사귄 친구 중에 관광가이드하는 30대 중반의 아그가 있습니다. 제가 보홀에 간다고 했더니 Anda에 꼭 놀러가보라고 추천하더군요. 필리핀의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게 한가하고 여유로움이 넘친다는 추천사까지 덧붙이면서요.
그래서, 가봤습니다.
보홀섬 내에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움직이는 곳과는 거의 정 반대에 위치한 안다(Anda)는 론리플래닛에도 그냥 스쳐지나치기 쉬운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던데, 실제로는 관광객들이 그 근처에 가지도 않습니다.
제가 머물던 리조트에도 저렴한 방 3개는 다 유럽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1km 이상의 화이트비치에 관광객이라고는 저를 포함해서 다해도 7 ~ 8명뿐이었죠.
참, 안다에는 백사장이 우리나라 동해안처럼 연속적으로 발달되어 있고, 각각의 백사장에는 한두개의 리조트가 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면소재지나 동 정도되는 중심지였습니다.
아마 30년 전의 보라카이가 이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화이트비치는 관리가 안되어 밀려온 해초들로 지저분하게 보이지만 실물은 아주 끝내줍니다. 수중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로 찍다보니 물방울이 렌즈에 묻어서 조금 번졌네요.
제가 머물렀던 리조트 바로 앞의 백사장 일부를 날 좋을 때 다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모래가 아니라 산호가루로 이뤄진 백사장을 화이트비치라고 부르죠.
바로 그 백사장 앞에서는 저렇게 이동식 그물을 밀고 다니며 좁은 곳으로 밀려들어온 치어(방우스 새끼, 약 5mm 정도 크기)를 잡아서 생계를 잇는 젊은이들도 보이고,
저렇게 사이좋게 그물을 쳐서 조그만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도 보이고,
이렇게 혼자서 낑낑대며 그물을 들고 깊은 물에 들어가 대어를 잡으려고 악전고투하는 어부도 있죠.
바로 그 백사장 한가운데에는 바랑가이홀과 공원이 있어서 휴일이면 각종 놀이도 벌어지고,
그 백사장 뒤쪽은 저렇게 형태가 기묘한 산들이 배경으로 자리잡아 있기에, 이곳은 벼농사를 짓지못하고 오로지 옥수수와 어업으로만 살아갑니다.
좌측 끝 녹색지붕 건축물이 제가 묵었던 방. 1층처럼 보이는 곳은 바닷물이 들어오면 잠기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으며, 2층처럼 보이는 곳이 실질적인 1층으로 응접실로 꾸며져 있고, 꼭대기 옥탑방처럼 보이는 곳이 침실인데 파도소리 들으며 잠자는 것은 정말 낭만적이었지만,
불법건축물이어서 화장실과 욕실을 설치할 수가 없기에 정원 수영장 옆의 공용화장실과 샤워시설을 써야한다는 불편함과 구멍이 숭숭난 대나무 벽면 사이로 모기들의 방문이 잦다는 단점이 있죠.
리조트의 여자 메니저가 저더러 자꾸 저곳으로 이사와서 리조트든 다이버샾이든 사업을 하라고 꼬시던데, 혹하고 마음이 끌릴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람이 무턱대고 저런 곳에 정착하게되면 당연히 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한국관광객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할텐데, 물밀듯이 관광객들이 밀려드는 보라카이에서 다 죽어버린 산호를 바라보고 느꼈던 미안함을 생각한다면 어느 곳이든 정착하기 전에 한국 관광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생각해봐야겠지요.
예전에 팔라완의 촌구석 포트발튼에 가서 느낀 점이 유럽 아그들은 참 구석구석 한적하고 좋은 곳을 잘도 찾아다닌다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죠. 게이 커플과는 인사만 할 정도였고, 너른 백사장의 한적한 곳으로 도망만 다니는 다른 커플은 워낙 말수가 적어서 대화할 시간이 없었기에 그네들이 어떻게 알고 안다로 놀러왔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1,500 ~ 1,600페소짜리 싸고 좋은 방을 먼저 선점하여 오랫동안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죠.
그리고... 살아가는 모습은 지겹도록 많이 봤으니까 이번에는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까요?
필리핀은 천주교가 국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에 부활을 믿죠.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묘지에 매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매장을 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러하듯이, 살아 생전에 가난했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가난한 것이 이곳이죠.
마침 시골길 옆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몇 컷 찍어봤습니다.
저렇게 마을 공동묘지 입구를 지나면,
생전의 재력에 맞추어 다양한 모양으로 무덤을 만들죠.
멋진 집의 형태도 있고, 철책을 두르기도 하고요.
열대성 저기압 때문에 시간 지체가 너무 많아서 비용이 많이 늘어났고, 그래서 텅 빈 지갑때문에 며칠 더 쉬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오려니 왜 그리 처량하게 느껴지든지...
다행히 간밤에 집으로 돌아와 내일 모래 돈이 들어오게 해놨으니 또 다시 용기를 갖고 어디로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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