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탁[彫琢]이라고 하죠. 문장을 다듬는 것.
문장이라는 것은 완성했다고 생각하고서도, 다시 한번 검토하면 왜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이 보이는지...
그래서 4월 첫 주를 끝으로 모든 것을 완료했다는 의미로 다섯 개의 파일명에 Finish를 붙여두었습니다.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는 의미로요.
그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각의 파일에서 임의로 한 장(chapter)씩 추출한 PDF 파일을 읽어보았더니, 조사를 어색하게 활용한 곳과, 문장 배열을 바꾸는 것이 읽기에 더 편한 구문을 파일 하나당 두세 군데씩 발견하였습니다.
완성은 없습니다. 끝없는 노력뿐.
이제부터는 하루에 한 시간씩 천천히 읽으면서 수정해야 하겠다는 발상을 하였지만, 제가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시작하기에는 며칠의 여유기간이 있어서 CWG 제1권을 훑어보았습니다. 기분 좋게도, 정말로, 거의 손 델 곳이 없었습니다. 물론 조사 변경이나 구문 조정을 몇 군데 하기는 하였지만, 구태여 바꾸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또 기존에 출판된 서적을 읽을 때의 그런 애매모호하거나 벽에 막히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수십 번을 읽어도 그냥 지나치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죠.
원문에 보면, Who You Are(Who I am), Who You Really Are(Who I Really Am)라고, 한 단어로 볼 수 있는 표현이 무수히 등장합니다. Conversations with God 1 ~ 3, Communion with God, Home with God만이 아니라, 모든 CWG 시리즈에서 수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존 번역서에서는 이를 아주 애매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맥에 맞게끔 수시로 바꿔가면서요.
예를 들면, Who You Really Are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과 "참된 자신"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Who You Are는 답이 없습니다. 정말로, 편의상,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 "자신" 등 여러 가지로 번역하였습니다.
저는 각각 "자신의 진정한 실체"와 "자신의 실체"라는 표현으로 번역하였고요.
저는 원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서, 반드시 이해해야 할 의미가 있는 단어나 표현은 그 한글적 정의[定義]를 확정하고서, 이것을 반드시 번역문에 표기하였는데, 미처 위의 두 표현만큼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수사적 기법으로 간주하고는 계속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게 하필이면 제1권에 버젓이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대략적으로 그 내용을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Who You Really Are: 자신의 진정한 실체 = "절대계"에서의 내 존재.
Who You Are: 자신의 실체 = "상대계"에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와 관계할 수 있도록 ‘내가 스스로 창조한 존재’.
제1권이든지 나머지 모두에서든지 위 정의의 신설로 인해서 번역문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읽을 때 해당 표현이 들어간 문장의 내용에 대해서 이해가 훨씬 더 잘됩니다. 물론, 나머지 책들도 읽어봐야 하겠지만요.
제3권 제2장에 보면, "I am Myself, aware of Myself being Myself. This is what is meant by the statement, I Am That I Am."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번역하자면, "나는, 나 자신을 나 자신으로 인식하는, 나 자신이다. 이것이 ‘나는 존재하는 자다’라는 진술이 의미하는 것이다"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I Am That I Am"이라는 표현은 제1권부터, 제2권, Communion with God, Home with God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그 정의를 모른 채, 제1권과 제2권을 번역한다면, 그 내용은 엉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CWG 시리즈를 관통하는 몇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 보면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내용도 나오고요. "Ultimate Reality", "the Process", "Remembering" 등도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도 않고서, 제1권만 수십 번을 읽었다는 것이, 참 한심하게도 느껴집니다.
어쨌거나, 뒤늦게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2권부터 Home with God까지도 저 개념을 머리에 넣어둔 채로 천천히 읽어보고, 변경해야 할 내용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또 다시 생겼습니다.
며칠 전에 출판사 두 곳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CWG 1 ~ 3, Home with God 번역본을 출판한 아름드리미디어와 Communion with God 번역본을 출판한 한문화멀티미디어에 협의를 요청했습니다.
일단은 Neale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출판사와 협의를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차후의 진로를 선택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제가 예수쟁이는 아니지만, 일요일은 제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일요일에는 가급적 오전 한두 시간은 신나이 책을 읽고, 오후에는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까지 구태여 신나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대신에 이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일의 진척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또, 글을 쓰면서 제 마음을 정리할 수도 있고, 정보도 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가 서서히 터널을 빠져나가려고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터널에 갇혀 있고, 그래도 그 출구가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하루 정도는 출구를 찾으려는 몸부림을 멈춰도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일부터 1주일은 몸을 혹사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최대한 많이 걷고, 최대한 많이 힘쓰고, 그래서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려서, 그다음 주부터는 일상생활과 정상적인 운동량으로 체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저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였던, 지금도 하고 있는, 무수한 살육으로 인해서, 예수가 왜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화를 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활절을 함께 축하해 봅니다.
He is risen!
Happy E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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