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

텃밭

호린(JORRIN) 2020. 8. 1. 13:07

 

비 안 오는 토요일이면

새벽마다 끌려가는

산자락의 텃밭.

 

비료, 농약을 안 주니

고추 대여섯개, 머윗잎과 호박잎이

일주일에 한 번 가져오는 수확물이다.

 

오늘도 다섯시 반, 알람 소리에 깨어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밭을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노룬지 고라닌지가 다녀가면서

옥수수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잔손 안 가는 옥수수를 심어놨더니

장마에 먹을 게 없었는지

먹는 놈도 잔손질 안하고 먹고 갔다.

 

남은 옥수수라도 무사히 자라길 바라면서

오늘도 그냥 잡초나 뽑고

역시나 홀딱 벗은 지렁이나 구경하다가

장마로 열매를 맺지 않는

호박잎이나 따가려는데

몇 주 전에 두어 사발 가져다 둔 복합 비료가 생각났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고추, 오이, 가지는 비료를 조금 주고 가야겠다

그런 생각에 비료를 챙기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게으름에 이런 저런 핑계로

몇 주 동안 옥수수밭에 비료를 안 줬는데

만약에 줬다면 얼마나 약이 오를까?

하는 생각이 쓰라림을 미소로 바꾼다.

고라니가 아니라 내 게으름이 이겼다.

 

 

 

'소소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정국과 개신교 신자들  (0) 2020.09.01
수영 교육을 회상하며...  (0) 2020.08.07
지렁이  (0) 2020.07.21
조직에서 남성 상사와 여성 직원의 관계  (0) 2020.07.16
종교와 신천지  (0) 202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