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

코로나 정국과 개신교 신자들

호린(JORRIN) 2020. 9. 1. 23:21

[.서귀포 이중섭거리에서 발견한 사진 작품]

개신교 신자들은 흔히 말합니다.

일부 목사가, 일부 신도가 그렇지 대부분은 그렇다.”

 

그런데 그런 목사와 그런 신도가 너무 많아서 살기가 힘듭니다. 특히, 더위와 코로나 정국에서는 짜증스럽네요.

 

도대체 우리나라 개신교 목사들은 저렇게 마음 놓고 헛소리를 씨부리는지, 개신교 신자들은 저렇게 사람들처럼 자기네 종교 지도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이라고 있는 행동을 할까요?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근본적인 원인은 크게 가지로

 

1.   개신교 신자들은 기본적으로 죄를 많이 지어서 인지는 몰라도, 죽어서 지옥에 가게될까봐 엄청나게 겁을 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죽기 전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구입해서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2.   믿음의 기본이 되는 경전이 난해하고, 특히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서 이상한 말투와 축약형을 사용해서 더욱 난해하게 치장 놓았기에, 누군가가 그것을 짜집기식으로 해석을 해주지 않으면 이해가 안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3.   이렇게 신도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죄인이 '이해가 난해하지만 신성 경전'을 해석할 수는 없을테니 누군가에게 판단을 맡겨야 하기에, 그 종교의 지도자란 사람이 경전을 해석한 결과가 해당 집단의 기본 이념이 뿐만 아니라 신도의 행동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다시 말해서, 신도는 일상 생활도 종교 지도자의 지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먼저 지옥의 개념을 살펴보면, 카톨릭은 2천 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름대로 중심을 잡아가다 보니 이제는 이상 지옥이라는 그런 유치한 개념으로 사람들을 협박하지 않습니다. 1999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옥은 실제의 장소가 아니라, 신에게서 분리된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선언했죠.

 

그런데 개신교는 다릅니다. 단일 지도자가 존재하는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라, 개별 목사가 우두머리인 구조여서 무수히 많은 선지자가 존재합니다. 설령 빌리 그래이엄 목사가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있는 유일한 것은, 지옥은 에게서의 분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라고 외쳐봤자, 다른 목사들은 그대로 너는 씨부려라, 나는 양들만 몰고 가련다하는 식인데다가, 신도들도 자기네 목사의 말만 믿습니다. 그러니, 개신교도들은 자신의 마음을 항상 지옥에 가져다 놓습니다.

 

번째, 경전의 난해성을 살펴보자면, 아주 좋은 예가 있는 주장이 신나이 저자 도널드 월쉬에게서 발견됩니다. 그는 신나이 도입한지 10년이 지나서도 자기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기독교 경전에서 지옥의 실체는 필수적인 교리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6 1, 2). 유다 지옥이 실제의, 문자 그대로의, 불과 고문의 장소라고 가르쳤습니다 (유다서 3, 7). 사도 요한 지옥이 실제 장소라고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4 10, 2010~15, 21 8).”

 

도대체 저게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한국컴퓨터선교회에서 운영하는 누리집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편의 영어 경전은 검토에서 제외했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6>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내용 어디에 지옥의 실체가 필수라고 되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외계인의 언어도 아닌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번째로 <유다서>

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필요를 느꼈노니  

7. 소돔과 고모라와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여기에서도 지옥이 불과 고문의 장소라는 내용을 어떻게 뽑아낼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4 ~ 6절도 읽어봤지만, 지옥이 어떻다는 내용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14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20 10.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1. 내가 크고 보좌와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사망과 음부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1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여기에서는 지옥이 실제 장소라고 볼만한 내용이 조금은 보입니다. 마치 관찰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관인 것은 보좌에 앉으신 앞에서 마귀 저희를 고문한다고 되어있네요. 정말로 가관입니다. 신이란 자가 자기 자식이 불과 유황으로 고문 당하는 것을 그냥 놔두고 있다니

 

어쨌든, 위에서 기독교 경전 3군데를 살펴봤지만, 우선은 뜻을 알기가 어렵고, 다음으로는 해석하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멋대로 해석해서 그게 듣는 사람의 귀에 쏙쏙 들어가면 아주 뛰어난 목사라고 인정을 받게 되고, 그러면 목사는 그때부터 위에 군림합니다. 신을 받들어 모신다는 목사가 하느님 나한데 죽어!”라고 해도 신도들이라는 자들은 그냥 열광할 따름입니다.

 

번째 이유는 번째와 번째 이유가 결합된 것입니다. 신도는 지옥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죄인이기에, 죄인이 자의적으로 경전을 해석하는 그런 불경스러운 짓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죄의 사함을 받은 누군가가 경전을 해석해줘야만 합니다. 그래서 자격증을 목사가 경전을 해석해서 설명해줘야 하는데, 설명의 범위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대로 생활 종교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목사가 마음만 먹으면 신도의 모든 일상적인 행위에 목사가 원하는 대로 제약이나 의무를 부여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도들은 목사의 가르침이 닿지 않은 곳과 마주하면, 목사의 지침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대부분의 판단은 목사가 하고 신도는 그냥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이런 신도들이 넘쳐나기에, 목사가 공개된 장소에서 집사에게 빤스를 벗어라고 해서 벗으면 집사고, 아니면 신자가 아니다라고 해도, 목사에게는 여신도들이 넘쳐납니다. ‘언제쯤이면 나도 빤스를 벗는 신앙 시험을 치루게 될까하는 기대감에 몰려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요.

 

,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을 테니, 그냥 맛보기만 하고 여기에서 그만 하렵니다.

 

신나이 좋은 것은, 판단의 근원을 자신의 외부에 두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죠. 자신의 내부에서 자신의 진리를 찾고, 타인의 진리를 따르며 살아가지 말라고 권하고요.

 

모든 개인이 처음 해보는 어떤 행위를 하기에 앞서서 모든 사람이 행위를 한다면, 그게 인류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대해서 상상해본다면, 그리고 상상의 결과를 스스로 판단하고, 판단에 따라서 행동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참 조화로울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와 개신교 신자들 때문에 짜증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사건들로 인해서 인생이라는 어떤 모자이크가 조금 메꿔졌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사건들도 영혼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저를 데려가는 인생길 위에서 잠시 스쳐가는 풍경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완벽한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한두 개의 구성품.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존경을 표합니다[나마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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