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더운 7월 하순이 되면, 서해안에서 땀을 흘리던 젊은 시절의 한때를 기억하곤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고무보트를 물가에 정박시켜놓고서, 점심먹고, 낮잠자고, 몸풀기 운동하고나서 바다로 나가면, 물은 저 멀리 족히 1km는 도망가 있다. 그러면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서 그 뻘밭을 걸어나가서 다시 수영 연습을 하곤 했다.
거꾸로, 점심 먹으러 들어오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든, 육지로 돌아올 때에는 물 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그 먼 거리를, 그 무거운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서 백사장까지 돌아와야 할 경우도 있었다. 모두 다 한때의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리도 고무보트가 무겁던지...
수영을 배우면서 크게 느낀 것이 있었다. 몸에 힘을 빼라는 것과 무식하면 유리하다는 것이다.
1km 이상의 수영 실력을 갖춘 80여명의 지원자들 틈에서 개헤엄으로 10m 정도나 겨우 떠다니는 실력의 내가 살아남은 것은 무식하였기 때문이다. 교관과 조교가 한 번씩 정확한 자세를 시범보이고 나서는, 엉터리 자세로 수영하는 훈련생은 가차없이 물을 먹여 쫒아보냈다. 우리 훈련생들은 평형, 자유형, 배영, 횡형 등 인명구조에 필요한 수영 영법을 하루 종일 영법을 바꿔가면서 연습하는데, 조교들은 심심하면 수시로 보트에서 내려와 갖은 핑계로 물을 먹였고, 바닷물을 들이켜서 똥물까지 뱉어내는 체험을 두어번 하고 나면, 아무리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호령을 해도 두 번 다시는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게 된다.
이미 1km 이상의 수영실력을 갖췄다는 것은 그만큼 똥폼이 완전하게 몸에 고착되었다는 의미이기에, 제아무리 자세를 고치려고 노력을 해도 바로 앞에 조교가 보이기만 하면 갑자기 허우적거리며 몸에 밴 자세가 나오게 되고, 그러면 얄짤없이 물을 먹게 되기 때문에 갈수록 공포가 더 거세진다.
육지에서 하는 유격훈련이라면 하루 종일 맞고 기더라도 큰 문제가 없지만, 물속에 깔려서 숨을 쉬지 못하여 짠물을 들이키고는 목이 타들어가는듯한 고통 속에서 더 올라올 것이 없어 똥물까지 토해본 사람이라면, 차라리 소속 중대로 돌아가서 하루 종일 원산폭격을 하고 있으면 있었지, 의지만 갖고서 인명구조반에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워낙에 수영 실력이 없다보니 물도 먹고 쫒겨날뻔한 적도 있었는데, 훈련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쫒아내도 계속 남겠다고 간청할 정도의 의지력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워낙에 수영 실력이 없다보니까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가르쳐 주는 모든 자세를 바로바로 습득할 수 있었고, 그래서 물 먹은 적이 몇 번 안될만큼 적응이 빨랐다.
그 다음 문제는 속도와 힘이었다.
훈련을 시작한지 4 ~ 5일이 지나고나서부터 어깨에 큰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평형은 팔힘을 많이 사용하는데, 자기 구조의 기본은 평형이었고, 그래서 하루의 절반은 평형을 연마하는데 사용하였기에 어깨에 무리가 많이 왔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중도 탈락을 고민하던 중에 팔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발만으로 평형을 연습해봤다. 대부분이 중사와 하사 혹은 장교인 훈련생들 중에서 사병인 내 계급이 제일 낮았고, 실력도 내가 제일 꼴찌였다. 그래서 같은 꼴찌 그룹으로부터도 욕을 얻어먹으면서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을 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발힘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평형을 할 때 발로 물을 차면서 두 손바닥으로 바다를 사과 크기 정도로만 문질러도 머리부터 복부 부근까지가 물밖으로 나올 정도의 추진력이 생겼다. 이후에 자유형과 횡형에서도 발힘이 엄청난 역할을 하게되어, 어깨의 통증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유롭게 두 팔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80여명으로 시작했던 인명구조반은 1주일 후에 23명이 남게되었고, 2주 후에 수료시험을 치룰 때에는 17명이 남았으며, 나는 항상 꼴찌로 쫒아가다가 수료할 때는 중간 성적으로 마무리하여, 그 당시로서는 아주 드물게 대한적십자사의 수상인명구조원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내가 2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다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회상 과정에서 자신의 기술, 자신의 지식에 얽매이면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기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자 함이다.
우리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보듯이, 원시 종교를 거쳐온 사람들은 자신만이,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는 사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에 함께 대화하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 소금물을 먹여도 바뀌지 않는 수영 자세처럼, 대부분의 원시 종교 종사자들은 온갖 욕을 얻어먹어도 자신의 종교가 가장 위대하고, 자신의 사고가 가장 올바르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신과 나눈 이야기 시리즈의 저자인 닐 도널드 월시에게 영혼과 관련해서 책에 표현된 문장이 잘못된 것 같다며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영혼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잊고 있을 수도 있다"며 예를 든 것이 예수가 헤롯교회에서 장사꾼을 쫒아낸 것과 또 다른 예수의 행적이었다. 기독교 신자들이 말만 꺼내면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이 어떻고...", 혹은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배꼽을 낳고..."하는 식이었다
신나이 사상을 퍼트린 닐같은 사람조차도 여전히 자신이 자라난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 사고하고 있었고, 내 생각에는 신나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느끼게 되는 "천국", "지옥", "처벌", "판단"에 대한 닐의 선입관과 "윤회"에 대한 닐의 거부감 등 닐에게 생성된 기독교적 받침생각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노자의 사고에 의하면, 비우지 않으면 다른 것을 채울 수 없다. 달리 말해서 더 좋은 것을 채우려면, 갖고 있는 것을 내버려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고 있는 것은 챙겨두고서, 이론적으로 허전한 부분만 다른 것으로 보완하려고 한다. 그러니 변할 수가 없다.
게다가 한 번 체득한 방법도 바꿀 생각을 못한다. 몸에 힘을 빼야 기술이 생기는데, 자신의 사고 방식에 강력한 힘을 걸어놓고는 다른 사고 방식을 넘보고 있으니, 그런 사고로는 다른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정말로 어렵다.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할 때, 그때서야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면 공이 멀리 날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골프나 야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진리다.
문제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모든 것을 갖는다는 진리를 눈동냥으로 알고 있는 나 자신 조차도 버린다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에 들어서야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많이 깨닫는다.
그동안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특정 방식으로 특정한 것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했었는데, 70몇 억의 인구가 제각각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나는 나만의 독특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그런 독특한 체험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쪽으로 촛점을 맞추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 느낌이다.
몇년 동안 의미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의무적으로 15분 이상 명상을 한다고 설쳐대다가 두어달 전에는 그것을 중단했고, 한달 정도 지난 후에 어느 정도 마음이 돌아왔을 때부터 시간에 구애없이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은 날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니까, 마음이 편해서 더 좋다. 명상할 때는 결가부좌를 하고서 다리가 저릴 때까지 앉아있는데, 늘어나는 시간이 내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고 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갑자기 많이 늘었다. 안보이던 것들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되니까 마음이 갑자기 바빠졌다. 요즘은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에 또 다시 마음을 달래며 힘을 빼내고 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다. 거북이처럼 한걸음 또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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